근래까지 절터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다가, 1931년~1935년에 발견된 비석 조각을 통하여 그곳이 숭복사(崇福寺) 터임을 알게 되었다. 숭복사 비석 조각은 현재까지 15조각이 발견되었는데, 비의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다. 다만 최치원(崔致遠)의 문집에서 추려낸 4개의 비문, ‘ 사산비명(四山碑銘)’ 중에 숭복사비가 포함되어 있어 비석의 조성 배경을 알 수 있게 되었다. 885년(헌강왕 11) 최치원에게 비문을 짓도록 명령하였는데, 이후 헌강왕과 그 뒤를 이은 정강왕이 연이어 승하하는 바람에 비문을 짓지 못하다가 896년(진성여왕 10)에 비로소 비문을 완성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비석 조각은 국립경주박물관과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숭복사 터의 지세 및 금당(金堂) 터, 석단(石壇)은 규모 면에서 불국사와 비슷하다. 석통(石桶)이 있다. 또 이곳에서 ‘국사대웅(國寺大雄)’과 ‘개와대웅(蓋瓦大雄)’ 등의 문자가 새겨진 평와(平瓦)를 비롯하여 쌍두귀부(雙頭龜趺)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금동제 금구(金口)와 비석의 부서진 조각 3개가 발견되었다.
경문왕 때 원성왕의 추복(追福)을 목적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숭복사지삼층석탑(崇福寺址三層石塔)은 1985년 8월 5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숭복사 터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으로, 일부 석재가 파괴되거나 없어진 채 남아 있다. 기단부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양각되어 있고, 1층 옥신의 4면에는 문비(門扉)가 조각되어 있다. 각 옥개석(屋蓋石)의 받침이 4단으로 된 3층 석탑이다. 동탑은 서탑과 같은 크기와 양식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부 파괴된 기단부와 1층 옥신, 2개의 옥개석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