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복사 ()

경주 숭복사지 전경
경주 숭복사지 전경
불교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토함산 기슭에 있었던, 신라시대 파진찬 김원량이 창건한 절.
이칭
이칭
곡사(鵠寺)
유적/건물
건립 시기
신라시대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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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숭복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토함산 기슭에 있었던, 신라시대 파진찬 김원량이 창건한 절이다. 경문왕 때 원성왕의 추복을 목적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절터에서 최치원이 쓴 숭복사 비편이 발견되었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숭복사지삼층석탑 등이 전한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토함산 기슭에 있었던, 신라시대 파진찬 김원량이 창건한 절.
발굴경위 및 결과

근래까지 절터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다가, 1931년~1935년에 발견된 비석 조각을 통하여 그곳이 숭복사(崇福寺) 터임을 알게 되었다. 숭복사 비석 조각은 현재까지 15조각이 발견되었는데, 비의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다. 다만 최치원(崔致遠)의 문집에서 추려낸 4개의 비문, ‘ 사산비명(四山碑銘)’ 중에 숭복사비가 포함되어 있어 비석의 조성 배경을 알 수 있게 되었다. 885년(헌강왕 11) 최치원에게 비문을 짓도록 명령하였는데, 이후 헌강왕과 그 뒤를 이은 정강왕이 연이어 승하하는 바람에 비문을 짓지 못하다가 896년(진성여왕 10)에 비로소 비문을 완성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비석 조각은 국립경주박물관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숭복사 터의 지세 및 금당(金堂) 터, 석단(石壇)은 규모 면에서 불국사와 비슷하다. 석통(石桶)이 있다. 또 이곳에서 ‘국사대웅(國寺大雄)’과 ‘개와대웅(蓋瓦大雄)’ 등의 문자가 새겨진 평와(平瓦)를 비롯하여 쌍두귀부(雙頭龜趺)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금동제 금구(金口)와 비석의 부서진 조각 3개가 발견되었다.

원건물 건립 경위

경문왕의 모후인 소문왕후(昭文王后)의 외숙이며, 경문왕비 숙정왕후(肅貞王后)의 외조부인 파진찬(波珍飡) 김원량(金元良)이 세운 곡사(鵠寺)가 숭복사의 기원이다. ‘곡사’라는 절명은, 절에 고니 모양의 바위가 있어 이름 붙인 것이다. 원성왕이 죽자 이곳에 능을 만들고, 지금의 승복사 터로 절을 옮겨 개창하였다.

변천

경문왕 때 원성왕의 추복(追福)을 목적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관련 문화유산

숭복사지삼층석탑(崇福寺址三層石塔)은 1985년 8월 5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숭복사 터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으로, 일부 석재가 파괴되거나 없어진 채 남아 있다. 기단부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양각되어 있고, 1층 옥신의 4면에는 문비(門扉)가 조각되어 있다. 각 옥개석(屋蓋石)의 받침이 4단으로 된 3층 석탑이다. 동탑은 서탑과 같은 크기와 양식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부 파괴된 기단부와 1층 옥신, 2개의 옥개석만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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