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을사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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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 「皇帝御璽」)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주미한국공사는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이다.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국정 전반에 간섭하자, 조선은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그후 이하영·이완용·이채연 등이 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미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중국과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일부는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주미한국공사 (駐美韓國公使)
주미한국공사는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이다.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국정 전반에 간섭하자, 조선은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그후 이하영·이완용·이채연 등이 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미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중국과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일부는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부민단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허겸 (許蒹)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부민단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강윤희 (姜允熙)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