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목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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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가 1623년경에 쓴 칠언시 필적.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仁穆王后 御筆 七言詩)
조선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가 1623년경에 쓴 칠언시 필적.
목릉(穆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조선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및 인목왕후 김씨의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이다. 1600년에 건원릉의 동쪽에 인목왕후의 유릉이 건립되고, 1608년에 선조가 승하하자 건원릉 서쪽에 산릉을 조성하였으나, 병풍석이 무너지는 문제가 생기자 1630년에 유릉의 서남쪽으로 천릉하였다. 이로써 선조와 의인왕후의 능역을 합하여 목릉이라 불렀으며, 1632년에 인목왕후가 선조의 능침 동남쪽에 안장되어 동원삼강릉이 되었다.
목릉 (穆陵)
목릉(穆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조선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및 인목왕후 김씨의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이다. 1600년에 건원릉의 동쪽에 인목왕후의 유릉이 건립되고, 1608년에 선조가 승하하자 건원릉 서쪽에 산릉을 조성하였으나, 병풍석이 무너지는 문제가 생기자 1630년에 유릉의 서남쪽으로 천릉하였다. 이로써 선조와 의인왕후의 능역을 합하여 목릉이라 불렀으며, 1632년에 인목왕후가 선조의 능침 동남쪽에 안장되어 동원삼강릉이 되었다.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
영창대군 (永昌大君)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