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종이에 칠언시 28자를 대자 해서로 쓴 것으로 근래에 족자로 개장되었다. 시 내용은 “늙은 소 힘을 쓴 지 이미 여러 해, 목이 헐고 가죽이 헤어져 잠자기만 좋아하네. 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만족스러운데, 주인은 어찌 고생스럽게 또 채찍을 더하는가?”이다. 늙은 소를 가엽게 여기는 내용이라 하여 흔히 ‘민우시(憫牛詩)’라 불린다.
이 필적과 관련하여 명안공주관련유물(보물, 1995년 지정) 가운데 이 칠언시 필적을 목판에 새긴 인본(印本)이 있는데, 말미에 1712년 정월 보름에 숙종이 짓고 쓴 칠언절구 2수가 새겨져 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위 목판 인본과 같은 형식으로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모사한 것도 전한다.
한편 칠언시 28자 획 안에는 발원문 29자가 작은 글자로 진하게 쓰여 있다. 칠언시 한 자마다 한 글자씩 쓰고 마지막 자에 두 글자를 썼다. 내용은 “비구 사의가 몸을 보전하고 의식과 보화로 상좌를 효양하며 구족하게 성취하기를 크게 바랍니다. 석 비구 제월당이 삼가 봉하다[比丘社誼保体 衣食宝貨孝養上佐 具足成就之大願 釋比丘濟月堂謹封].”이다. 즉 비구 제월당이 비구 사의의 소원을 쓴 것인데, 어필의 획 안에 숨기듯 쓴 이유는 미상이다.
칠언시 아래에는 1966년 초여름에 서예가 배길기(裵吉基)가 예서로 쓴 발문이 있다. 내용은 “이것은 인목왕후가 직접 쓴 고시인데 예전에 금광명최승왕경과 함께 칠장사에 간직했으니 참으로 묵보이다. 이제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해 보니 그가 직접 쓴 것임에 의심할 바 없다.”이다. 여기의 ‘금광명최승왕경’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사(七長寺)에 전해오다가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지본묵서의 「금광명최승왕경」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왕후의 어필로 17세기 이후 한글 편지가 다수 전하나 이처럼 대자로 쓴 예는 드물다. 또 조선 후기에 종친의 주도로 역대 임금의 어필이 다수 모각되었는데, 이 칠언시처럼 모각된 어필과 원래의 묵적이 함께 전하는 경우도 드물다. 인목왕후의 글씨는 선조어필과 유사한데, 대자이기 때문에 짜임은 긴밀하지 않으나 정중한 운필에서 왕후의 당당한 기품이 나타나는 듯하다. 필사 연대는 없으나 1623년 인조반정 직후로 여겨진다. 인목왕후는 1613년(광해군 5) 친정아버지 연흥부원군 김제남(金悌男)이 사사되고 이듬해 아들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증살되며 1618년 자신도 폐위되어 서궁(西宮: 경운궁)에 갇히는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었고, 이에 그들의 명복을 빌고자 칠장사를 원찰로 삼아 중창불사를 벌인 바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