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어필 - 읍궁진장첩
아름답다 [영] 영웅 [영]
부수 艸 총획 11
할아버지 [조]
부수 示 총획 10
모시다 [어]
부수 彳 총획 11
붓 [필] 별 이름 [필]
부수 竹 총획 12
물많다 [답] 물 끓어 넘다 [답] 걸어가며 북치다 [탑] 울다 [읍]
부수 水 총획 8
활 [궁] 자 [궁]
부수 弓 총획 3
진귀하다 [진] 드리다 [진]
부수 玉 총획 9
숨다 [장] 오장 [장]
부수 艸 총획 20
부전 [첩] 시지 [첩]
부수 巾 총획 8
- 예술·체육
- 문헌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 명칭 영조어필 - 읍궁진장첩 (英祖御筆 - 泣弓珍藏帖)
- 분류기록유산/서간류/서예/서예
- 소재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수원박물관 (이의동,수원박물관)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116310300
- 위도37.3041698
- 종목 보물(2010년 01월 04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2015년
- 이완우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영조어필-읍궁진장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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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英祖)가 노년에 쓴 여러 어필을 모은 서첩.
내용
이들 어필은 영조 때 문신이던 심수(沈鏽, 1707~1776) 부자가 모은 것으로 여겨진다. 1761년 내의원에 비답을 내릴 때 심수는 도승지로 내의원 부제조를 겸했고, 1761, 1763년 전교는 도승지 심수를 통해 전해졌으며, 1771년의 직산어사 심이지는 심수의 아들이었다. 심수는 본관이 청송(靑松)으로 1727년 생원시 입격, 1745년 정시문과 합격 후 승정원 부승지·승지로 내의원 부제조·제조를 겸했고, 1760년 도승지에 특별히 제수된 뒤 1764년 5월까지 영조를 측근에서 보필하였다. 그 뒤 예조·형조·이조판서와 함경감사·한성판윤·경기감사 등을 지냈고 1776년 기로소에 들어가 그해 사망하였다.
오늘날 영조의 어제어필을 모은 서첩이 자못 전하는데, 그중에서도 『읍궁진장』 첩은 연대를 알 수 있는 필적이 많아 영조의 노년 서풍을 잘 살필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 고급 장황으로 꾸며졌고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그 가치가 더욱 높다.
참고문헌
- 『영조어필』(이완우, 수원박물관, 2012)
- 『한국의 옛글씨』조선왕조 어필(문화재청,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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