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어필 - 시국제입장제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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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쓴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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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쓴 어필.
내용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조가 1798년 9월 9일에 성균관에서 설행된 국제(菊製)에서 여러 유생이 임금이 낸 주1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거친 답안을 내고 심지어 백지까지 내자 정조가 직접 써서 유생들에게 내보였던 어필 주2이다. 장지 세 장을 이어붙인 대폭으로 글자 사이에 더 써넣거나 적절치 않은 글자는 먹으로 뭉개고 다시 썼다. 상단에는 이 별유를 게시하고자 잘랐던 것으로 여겨지는 칼집이 여섯 군데 나있다.

국제는 성균관 유생과 지방 유생에게 주3로써 보이는 절일제(節日製) 시험으로 국월(菊月) 즉 구월 구일에 열리기 때문에 국제 또는 구일제라고 한다. 절일제는 인일(人日: 1. 7), 상사(上巳: 3. 3), 칠석(七夕: 7. 7), 중양(重陽: 9. 9)에 설행되는데, 합격자는 곧바로 문과 전시(殿試)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거나 시상을 하였다. 시험과목은 증광전시(增廣殿試) 때처럼 대책(對策) · 표(表) · 전(箋) · 잠(箴) · 송(頌) · 제(制) · 조(詔)에서 하나를 골라서 지었는데, 이 정조어필은 특별한 경우이다.

정조가 낸 문제는 “포촉불언(抱蜀不言) 홍곡장장(鴻鵠鏘鏘)”이었다. 정조는 “임금이 공경스럽게 촉(蜀:제사 그릇)을 지키고 예로써 백관을 통솔하면,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어도 묘당(廟堂)의 정사가 자연스럽게 가다듬어지고, 그러면 그 덕에 감응되고 교화가 행해져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 큰기러기와 고니가 장장 울고 백성들이 노래하며 찬미한다는 뜻이다. 이르기를 ‘제사그릇을 안고 말하지 않아도 묘당이 가다듬어지며, 큰기러기 고니가 장장 울고 백성들이 노래한다(抱蜀不言 廟堂旣修 鴻鵠鏘鏘 維民歌之)’ 하였으니 이는 관자(管子)의 말씀이다.” 하였다. 정조는 평소 이 구절에 유념한 듯 “마침 국제로 인해 기러기 소리를 듣고 생각이 나서 붓 가는대로 써 내려 보냈다.” 하였다.

이 별유는 『승정원일기』, 『정조실록』, 『홍재전서』권56 「시국제입장제생」에 실려 있다. 실록 해당 기사에서 “여러 유생이 어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주4로써 유생들에게 유시하기를…” 하였고, 또 별유 앞쪽에서 “많은 선비가 둔하고 거친 것은 바로 나의 부끄러움이니, 이에 초기(草記)를 환급하고 너희에게 특별히 유시하는 까닭이다.” 하였으며, 별유 말미에서 “사흘 안에 그 제목에 따라 지어 올려 조금이라도 오늘의 죄를 벗고 오늘의 수치를 씻어라.” 한 것을 보면, 국제 결과를 되돌려 보내고 사흘 안에 다시 지어 올리라는 뜻을 분명히 전하기 위해 직접 써서 내린 듯하다.

이 어필은 조선시대 임금이 국제에 응시한 유생들에게 내린 보기 드문 별유로서 그들의 학업을 독려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 정조 재위 후년의 다른 어필에 비해 글자가 크고 필치도 활달하며, 정조의 모훈(謨訓)으로서 봉모당(奉謨堂)에 보존되어왔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한국의 옛글씨』조선왕조 어필(문화재청, 2009)
주석
주1

임금이 친히 과거장에 나와서 보이던 과거의 글제. 우리말샘

주2

임금이 특별히 내리던 지시나 분부. 우리말샘

주3

시나 글을 지음. 우리말샘

주4

임금이 손수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집필자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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