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시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과거 중 식년시와 증광시에서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두 번째 단계의 시험.
이칭
이칭
회시(會試)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1392년
폐지 시기
1894년
내용 요약

복시는 조선시대 과거 중 식년시와 증광시에서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두 번째 단계의 시험이다. 모두 한양에서 시행하였으며, 문과와 무과 합격자에게는 최종 단계 시험인 전시에 응시할 자격을, 생원·진사시와 잡과 합격자에게는 최종 합격자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정의
조선시대, 과거 중 식년시와 증광시에서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두 번째 단계의 시험.
복시의 용례

고려시대 과거는 초시나 전시 없이 한 단계의 시험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렸는데, 이 시험을 예부시(禮部試)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서는 초시(初試)전시(殿試) 제도를 도입하여 시험이 두 단계 혹은 세 단계로 늘어났는데, 두 번째 단계에 시행하는 시험을 복시(覆試) 또는 회시(會試)라고 불렀다.

복시(覆試)라는 용어는 『고려사』에도 보인다. 하지만 이때의 복시는 예부시에서 선발한 사람들을 국왕이 다시 시험한다는 의미였다. 이 용법은 조선 초기에도 그대로 통용되어 전시(殿試)를 묘사할 때 복시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대신 시관이 주관하는 두 번째 단계의 시험은 회시(會試)라고 일컬었다. 그 후 복시도 회시와 같은 의미로 정착되어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복시의 시행

『경국대전』에는 문과무과는 초시, 복시, 전시 세 단계의 시험을 치르고 국왕이 주관하는 전시에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고, 생원 · 진사시와 잡과는 초시와 복시 두 단계의 시험을 치르고 복시에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고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식년시에 대한 것이지만 증광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다가 『속대전』에 해당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 외의 별시(別試), 알성시(謁聖試), 정시(庭試) 등은 초시와 전시, 혹은 전시에 해당하는 한차례의 시험만 치렀고, 복시 제도는 없었다. 복시는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있는 제도였다.

복시는 초시의 합격자와 이에 준하는 직부회시(直赴會試)의 자격을 가진 자들을 함께 시험하여 두 번째 단계의 합격자를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모두 한양에서 시행하였는데, 문과와 생원 · 진사시, 잡과예조, 무과는 병조에서 주관하였으며, 초시보다 더 많은 수의 시관(試官)을 파견하여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시험 과목은 문과의 경우 초시와 약간 차이가 있었으나 무과, 생원 · 진사시, 잡과는 초시와 동일하였다. 문과와 무과 합격자에게는 다음 단계의 시험인 전시에 응시할 자격, 생원 · 진사시와 잡과 합격자에게는 최종 합격자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문과 복시

문과 복시는 초시 합격자 240명(뒤에는 243명)과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응시자를 함께 시험하여 33명을 선발하였다. 대증광시(大增廣試)는 40명을 선발하였는데, 이에 비례하여 초시 선발인원도 380여 명으로 늘렸다.

응시자는 복시에 앞서 『경국대전』과 『가례(家禮)』를 강하는 전례강(典禮講)에 응시하여 합격해야만 복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시험장은 두 곳으로 나누어 각각 절반씩을 선발하였는데, 숙종 대 『태학성전(太學成典)』에 따르면 초시의 합격 지역을 기준으로 시험장을 나누어 배정하였다. 시험장마다 종 2품 이상의 문관 3명과 3품 이하의 문관 4명 등 시관 7명과 감시관(監試官)인 사헌부사간원의 관원 1명씩을 파견하여 시험을 관리, 감독하였다.

시험 과목은 식년 문과 복시와 증광 문과 복시의 과목 구성이 달랐다. 식년 문과 복시는 초장 · 중장 · 종장으로 나누어 시행하였는데, 초장에서는 초시와 달리 사서삼경(四書三經)의 강경(講經)을 실시하고 그 합격자만 중장과 종장의 제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중장과 종장에서는 초시와 같이 각각 부(賦)표(表), 대책(對策)을 주로 시험하였다. 증광 문과 복시는 강경 시험을 제외하고, 초장과 종장으로 나누어 각각 부와 표, 대책을 시험하였다. 합격자에게는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무과 복시

무과 복시는 초시 합격자 190명과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응시자들을 함께 시험하여 28명을 선발하였다. 대증광시에서는 초시와 복시 모두 두 배를 뽑았다. 무과 역시 2개의 시소로 나누어 시행하였는데, 『속대전』에 따르면 거주지에 따라 시험 장소를 나누어 배정하였다. 시험 장소로는 주로 모화관과 훈련원이 이용되었다. 시험장마다 2품 이상의 문관 1명, 무관 2명, 당하관 문관 1명, 무관 2명 등 시관 6명과 감시관인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 1명씩을 파견하였다. 시험 과목은 무예(武藝)강서(講書)로 구성되었는데, 세부 과목은 초시와 동일하였다. 합격자에게는 문과와 마찬가지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생원 · 진사시 복시

생원 · 진사시는 초시 합격자 각 700명과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응시자들을 함께 시험하여 생원시와 진사시 각 100명씩을 선발하였다. 대증광시의 경우에도 동일하였다. 응시자는 먼저 『소학(小學)』과 『가례(家禮)』를 읽고 해석하는 학례강(學禮講)을 통과해야만 복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시험 과목은 초시와 동일하게 생원시는 오경의(五經義) · 사서의(四書疑), 진사시는 부(賦)와 시(詩)를 주로 시험하였다. 첫날 진사시를 치르고 하루 걸러 생원시를 치렀다. 역시 2개의 시소를 설치하여 정원의 절반씩을 선발하였다. 시험 장소는 문과와 마찬가지로 성균관, 예조, 장악원, 한성부 등이 주로 이용되었다. 시관도 문과 복시와 마찬가지로 시험장마다 종 2품 이상의 문관 3명과 3품 이하의 문관 4명 등 시관 7명과 감시관(監試官)인 사헌부와 사간원 관원 1명씩 총 9명을 파견하였다. 합격자에게는 생원이나 진사의 자격이 주어졌다.

잡과 복시

잡과에는 역과(譯科) · 의과(醫科) · 음양과(陰陽科) · 율과(律科) 등이 있었다. 초시는 해당 아문인 사역원(司譯院), 전의감(典醫監), 관상감(觀象監), 형조(刑曹)에서 각각 주관하였는데, 복시는 예조에서 주관하되 시험 내용의 전문성을 반영하여 해당 아문의 관원이 시관을 담당하였다. 시험 과목은 초시와 동일하였는데, 전공 서적의 강서(講書)를 기본으로 시험 분야의 특성에 따라 역과는 사자(寫字), 역어(譯語), 음양과는 주(籌) 등의 시험을 추가하였다. 강서하는 서적은 『경국대전』과 『속대전』 사이에 변화가 많았다. 합격자는 전문직 관료로 임용되었다.

복시 합격자에 대한 자격 부여

복시는 시험 종류에 따라 합격자에게 부여하는 자격이 달랐다. 문과와 무과의 복시는 중간 단계의 시험으로 합격자에게 전시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였다. 이에 비해 생원 · 진사시와 잡과의 복시는 최종 합격자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런데 문과와 무과의 전시에서는 당락을 가리지 않고 최종 등위만 정했기 때문에 복시에 합격하면 사실상 문과와 무과에 급제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대전회통(大典會通)』
『태학성전(太學成典)』
『무과총요(武科總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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