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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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형조 소속의 율관(律官)을 뽑기 위하여 시행한 잡과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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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형조 소속의 율관(律官)을 뽑기 위하여 시행한 잡과시험.
내용

율과는 국초에는 없었다가 뒤에 생겨나서『경국대전』에 역(譯)·의(醫)·음양(陰陽)과 더불어 잡과의 4과의 하나가 되었다.

율과는 다른 잡과와 마찬가지로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설행되었고 초시와 복시만 실시되었다. 초시는 상식년(上式年) 가을에 형조에서 실시하였고 복시는 형조가 예조와 함께 설행하였는데, 그 시취액수는 초시에 18인, 복시에 9인이었다.

초시의 시험과목은『대명률(大明律)』을 배강(背講)하였고,『당률소의(唐律疏議)』·『무원록( 無寃錄)』·『율학해이(律學解頤)』·『율학변의(律學辨疑)』·『경국대전』 등은 임문고강(臨文考講)하게 하였다. 복시의 시험과목도 초시와 같았다.

각 과목은 성적에 따라 통(通)·약(略)·조(粗)로 채점하여 통은 2분, 약은 1분, 조는 반분으로 계산하여 분수가 많은 사람을 뽑았다. 그리하여 합격자에게는 예조인(禮曹印)이 찍힌 백패(白牌)를 주었다.

율과출신자는 일단 형조의 권지(權知)로 배속되었다가 뒤에 율관이 되는데, 1등은 종8품계를, 2등은 정9품계를, 3등은 종9품계를 받았으며, 이미 품계를 가진 자에게는 그 품계에서 1계를 더 올려주고, 올린 품계가 응당 받아야 할 품계와 같을 경우에는 거기에서 또 1계를 올려주었다. 율관은 종6품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기술관(技術官)과 그 지위(地位)」(이성무, 『유홍렬박사화갑기념논총』,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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