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시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조선 성종 때, 현직 문무 관료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시(重試)의 하나.
제도/법령·제도
  • 시행 시기1482년(성종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박현순 (서울대 HK교수, 조선시대사)
  • 최종수정 2023년 11월 1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진현시는 1482년(성종 13) 10월에 특별히 실시한 중시의 명칭이다. 세조 대 발영시의 사례를 따라 시행되었으며, 문과에서 이승건(李承健) 등 4명, 무과에서 김수정(金守貞) 등 10명을 뽑았다. 특별히 치른 중시로 단 한 차례만 시행되었다.

정의

조선 성종 때, 현직 문무 관료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시(重試)의 하나.

#경과 조선에서는 10년에 한 번씩 문무 당하관(堂下官)을 대상으로 중시(重試)를 실시하였다. 지속적으로 문무의 자질을 연마하도록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합격자에게는 문과의 예에 따라 홍패(紅牌)를 주고 특별 승진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이외에 부정기적으로 중시를 시행하고, '등준시(登俊試)', '발영시(拔英試)', '탁영시(擢英試)' 등과 같은 명칭을 붙인 사례들이 몇 차례에 있었다. 진현시(進賢試)도 그중 한 사례이다.

1466년(세조 12) 문무 관료 등을 대상으로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를 시행하여 합격자들을 포상한 적이 있다. 이를 전례로 성종 대에는 진현시를 시행하였다. 1482년(성종 13) 9월 성종이 예종과 추존왕 덕종(德宗) 등의 능을 참배하고 돌아온 후 문무 관료를 위한 중시를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시험은 세조 대 발영시의 전례를 참고하였고, 시험 이름은 '진현시(進賢試)'로 정했다.

시험 내용과 선발 인원

진현시 문과는 1482년(성종 13) 10월 25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렸다. 성종이 자리한 가운데 윤필상(尹弼商) · 서거정(徐居正) · 임원준(任元濬) · 이파(李坡)독권관(讀卷官)으로 임명하고 책문(策問)을 출제하여 문신들을 시험하였다. 책문의 내용은 국방의 방책을 묻는 것이었다. 정원주서 이승건(李承健) 등 4명을 선발하였다.

같은 날 성종은 모화관(慕華館)에 행차하여 진현시(進賢試) 무과도 실시하였다. 시험 과목은 200보 달리기 · 강서(講書) · 기사(騎射) 등이었다. 이날 진암수(陳巖壽) 등 10명을 선발하였다. 이틀 후 후원(後苑)에서 편전(片箭)으로 다시 시험하여 사헌부감찰 김수정(金守貞)을 1등으로 선발하였다.

진현시를 시행할 때 종친인 풍성정(豐城正) 이강(李杠)이 응시를 희망하였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앞서 이강은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때는 종친들의 과거 응시를 제한하였기 때문에 진현시의 응시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현시 선발 인원은 문과 4명, 무과 10명으로 세조 대 발영시의 문과 40명, 무과 43명, 등준시의 문과 12명, 무과 51명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참고문헌

  • 원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논문

  • - 김창현, 「조선초기 중시에 관한 연구 -문과 중시를 중심으로-」(『국사관논총』 80, 국사편찬위원회, 1998)

  • -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 중시 급제자 연구」(『역사와실학』 39, 역사실학회, 2009)

주석

  • 주1

    :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물어서 답하게 하던 과거(科擧) 과목. 우리말샘

  • 주2

    : 주서(注書): 조선 시대에, 승정원에 속한 정칠품 벼슬. 승정원의 기록, 특히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맡아보았다. 우리말샘

  • 주3

    : 대궐 안에 있는 동산. 우리말샘

  • 주4

    : 작고 짧은 화살. 날쌔고 촉이 날카로워 갑옷이나 투구도 잘 뚫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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