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성종 때, 현직 문무 관료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시(重試)의 하나.
#경과 조선에서는 10년에 한 번씩 문무 당하관(堂下官)을 대상으로 중시(重試)를 실시하였다. 지속적으로 문무의 자질을 연마하도록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합격자에게는 문과의 예에 따라 홍패(紅牌)를 주고 특별 승진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이외에 부정기적으로 중시를 시행하고, '등준시(登俊試)', '발영시(拔英試)', '탁영시(擢英試)' 등과 같은 명칭을 붙인 사례들이 몇 차례에 있었다. 진현시(進賢試)도 그중 한 사례이다.
1466년(세조 12) 문무 관료 등을 대상으로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를 시행하여 합격자들을 포상한 적이 있다. 이를 전례로 성종 대에는 진현시를 시행하였다. 1482년(성종 13) 9월 성종이 예종과 추존왕 덕종(德宗) 등의 능을 참배하고 돌아온 후 문무 관료를 위한 중시를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시험은 세조 대 발영시의 전례를 참고하였고, 시험 이름은 '진현시(進賢試)'로 정했다.
같은 날 성종은 모화관(慕華館)에 행차하여 진현시(進賢試) 무과도 실시하였다. 시험 과목은 200보 달리기 · 강서(講書) · 기사(騎射) 등이었다. 이날 진암수(陳巖壽) 등 10명을 선발하였다. 이틀 후 후원(後苑)에서 편전(片箭)으로 다시 시험하여 사헌부감찰 김수정(金守貞)을 1등으로 선발하였다. 진현시를 시행할 때 종친인 풍성정(豐城正) 이강(李杠)이 응시를 희망하였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앞서 이강은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때는 종친들의 과거 응시를 제한하였기 때문에 진현시의 응시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현시 선발 인원은 문과 4명, 무과 10명으로 세조 대 발영시의 문과 40명, 무과 43명, 등준시의 문과 12명, 무과 51명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시험 내용과 선발 인원
참고문헌
원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논문
- 김창현, 「조선초기 중시에 관한 연구 -문과 중시를 중심으로-」(『국사관논총』 80, 국사편찬위원회, 1998)
-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 중시 급제자 연구」(『역사와실학』 39, 역사실학회,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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