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6년 5월 10일 단오절을 맞아 서현정(序賢亭)에 행차한 세조가 2품 이상의 종재(宗宰)와 부장(部將) 등을 불러 주연을 베풀고, 왕 스스로 ‘치세지능신 난세지간웅(治世之能臣亂世之奸雄)’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운(短韻) 9장(九章)을 지었다.
이어서 재추(宰樞) 11인, 3품 이하 유신(儒臣) 100인, 선전관(宣傳官) 등에게 종이와 붓을 주고, 그 내용에 알맞은 시·부·송(頌)·책(策)을 지어 바치게 하여 합격자를 중시(重試)와 같이 대우할 것을 하명했다. 3일 후,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 등에게 지어 올린 글을 고열(考閱)하게 하여 34인을 선발하였다.
이에 장원으로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김수온(金守溫)이 뽑혀 예빈시(禮賓寺)로부터 쌀 20섬을 지급받았다. 나머지 합격자들도 과거급제자처럼 방(榜)을 내걸고 유가(遊街)하게 하였다. 이 때 강희맹(姜希孟)이 상중(喪中)이므로 발영시에 참가하지 못했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이에 세조는 14일 다시 문신 100여인을 사정전(思政殿)에 불러 글을 짓게 하고, 정인지(鄭麟趾)·정창손(鄭昌孫) 등을 독권관(讀卷官)으로 하여 강희맹 등 6인을 다시 뽑았다. 그리고 13일에는 뽑은 김수온 등 34인과 합해 40인을 최종합격자로 하였다.
그 내용은 1등 김수온·노사신(盧思愼)·강희맹 등 3인, 2등 성임(成任) 등 13인, 3등 이경동(李瓊仝) 등 24인이었다. 한편 16일에는 또 서현정에 나가 무신들을 친시(親試)했는데 응시자는 830인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각각 사후이시(射後二矢)·기사오시(騎射五矢)로 시험을 보았다.
다음날 세자(世子)에게 계속 시험하게 하여 권지훈련참군(權知訓鍊參軍) 금휘(琴徽) 등 43인을 선발하였다. 19일에는 문방(文榜)에서 장원을 한 김수온을 일품(一品) 승진시키고, 나머지 합격자도 자품(資品)을 올려주었다.
이러한 발영시는 같은 해 실시된 등준시(登俊試)와 함께 뒷날 제왕(諸王)에 의해 실시된 현직 관료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시의 한 전형이 되었다. →등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