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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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오위(五衛)나 포도청 등에 속해 있던 무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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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오위(五衛)나 포도청 등에 속해 있던 무관직.
내용

오위의 부장은 정원이 25인으로 여절(勵節)·병절교위(秉節校尉) 등으로 별칭되었다.

조선 전기의 오위는 1위가 5부로 편제되었는데, 5위는 25부가 되므로 이 부의 지휘, 감독의 책임을 지는 부장의 수도 부의 수와 마찬가지로 25인이었던 것이다. 오위의 군사조직이 위-부-통(統)-여(旅)-대(隊)-오(伍)-졸(卒)로 이루어진 것을 감안하면, 부장은 부의 장으로서 통을 영솔하는 오위 군사조직상의 핵심을 이루었다.

이들 부장은 각기 자기의 소속부의 병종을 이끌고 입직·행순·시위 등의 책임을 졌으며, 전투훈련 등에도 각 부의 병종을 지휘, 감독하였다.

그러나 후기에 오위의 기능이 유명무실하게 됨으로써 부장은 금군청(禁軍廳)인 내삼청(內三廳)에 소속되어 위장(衛將)과 함께 입직과 행순을 담당하였다. 또한 그 격도 떨어져 25인 가운데 7품 이하의 참외관(參外官)이 14인, 부조(父祖)의 공에 의해 임관된 남행참외(南行參外) 1인을 임명하였다.

특히, 참외관으로서 8품의 녹을 받는 자는 임기 600일이 차야 6품관으로 승진시켰으며, 참외관 임명자 중 한 자리는 도목정(都目政) 때마다 금군 가운데서 취재시(取才試)에 추천된 자를 후보자로 임명하였다. 뒤에는 더욱 격이 떨어졌는데, 참외관 11인과 남행참외 1인은 종9품으로 임기 720일이 만료되어야 6품으로 승진시켰다.

그리고 이들 부장 가운데 2인은 오위 위장소를 주관하던 조사위장(曹司衛將)에 속해 기병(騎兵)의 분배거행(分排擧行)을 했는데 이를 분군부장(分軍部將)이라 하였다. 또한 가장 으뜸되는 행수부장(行首部長)과 남행부장 등 2인은 입직·순경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의장고(儀仗庫)로 보내어 이를 전관(專管) 거행하도록 했는데, 이를 의장고낭청(儀仗庫郎廳)이라 하였다. 특히 남행부장은 의장도식(儀仗圖式)으로 시험을 본 뒤 근무성적에 반영하였다.

이러한 부장제도는 ≪속대전≫에 법제화된 이후 좌·우 포도청에도 각각 부장 4인, 무료부장(無料部將) 26인, 가설부장(加設部將) 12인 등이 있었다. 이들은 도성문 밖의 금군을 지휘하고 기찰(譏察)하는 책임을 졌다.

이 밖에도 서울의 8개 도성문, 목멱산(木覓山)의 봉수 및 오간수문(五間水門) 등을 지키는 금군 등도 일반적으로 부장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경국대전』
『대전회통』
『만기요람(萬機要覽)』
『한국군제사』-근세조선전기편-(육군본부, 조선군사연구실, 1968)
「조선초기 오위의 형성」(천관우, 『근세조선사연구』, 일조각,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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