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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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천서당은 1573년 조선 전기 문신 갈천 임훈과 동생 임운이 후학 양성을 위해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건립한 서당이다. 임훈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동생 임운과 성팽년 , 정유명, 정몽서, 신복행 등이 합심하여 서당을 만들었다. 이후 화재로 인하여 몇 번의 이건과 중건을 반복하다가 결국 소실되었으나, 1877년(고종 14) 정몽서 및 임훈의 후손들이 합심하여 재건했다. 현재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강당과 솟을 대문이 남아있으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갈천서당 (葛川書堂)
갈천서당은 1573년 조선 전기 문신 갈천 임훈과 동생 임운이 후학 양성을 위해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건립한 서당이다. 임훈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동생 임운과 성팽년 , 정유명, 정몽서, 신복행 등이 합심하여 서당을 만들었다. 이후 화재로 인하여 몇 번의 이건과 중건을 반복하다가 결국 소실되었으나, 1877년(고종 14) 정몽서 및 임훈의 후손들이 합심하여 재건했다. 현재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강당과 솟을 대문이 남아있으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경강상인은 지방의 조세곡 및 각종 물류를 운반해 주고 선가(船價)를 받아 이윤을 추구한 상인층을 일컫는다. 조선 후기 대동법의 시행으로 물류 유통이 확대되는 가운데 관영 조운선만으로 세곡 운송이 어려워지자. 정부에서는 경강상인의 사선(私船) 임운을 활용해 세곡 운송량을 늘렸다. 정조 대에는 작대제를 시행해 이들의 영업권을 보장하였다. 이에 경강상인은 어물, 목재 등의 유통망까지 장악해 이윤을 추구하는 한편, 일반 수요자들에게 물품을 판매하고, 시전 상인들과 결탁해 도고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사상 도고로 성장해갔다.
경강상인 (京江商人)
경강상인은 지방의 조세곡 및 각종 물류를 운반해 주고 선가(船價)를 받아 이윤을 추구한 상인층을 일컫는다. 조선 후기 대동법의 시행으로 물류 유통이 확대되는 가운데 관영 조운선만으로 세곡 운송이 어려워지자. 정부에서는 경강상인의 사선(私船) 임운을 활용해 세곡 운송량을 늘렸다. 정조 대에는 작대제를 시행해 이들의 영업권을 보장하였다. 이에 경강상인은 어물, 목재 등의 유통망까지 장악해 이윤을 추구하는 한편, 일반 수요자들에게 물품을 판매하고, 시전 상인들과 결탁해 도고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사상 도고로 성장해갔다.
경강선(京江船)은 조세 및 물류 운송과 군사 방어를 목적으로 한강에 드나들던 선박을 통칭하는 말이다. 선초부터 경강의 여러 진(津)에 선박을 비치하고 관원을 두어 관리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각 군문에서 한강, 노량, 양화, 송파 등에 군사용 선박을 비치해 두고 별장이 이를 관리하도록 했다. 한편 선초부터 세곡 운송의 일부를 민간용 선박에 맡기면서 경강 일대에 세곡 및 각종 물산을 수송하는 상업용 선박이 드나들었다. 대동법 시행 이후 경강상인들의 사선임운이 확대되고 한강 일대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강선의 왕래 또한 빈번해졌다.
경강선 (京江船)
경강선(京江船)은 조세 및 물류 운송과 군사 방어를 목적으로 한강에 드나들던 선박을 통칭하는 말이다. 선초부터 경강의 여러 진(津)에 선박을 비치하고 관원을 두어 관리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각 군문에서 한강, 노량, 양화, 송파 등에 군사용 선박을 비치해 두고 별장이 이를 관리하도록 했다. 한편 선초부터 세곡 운송의 일부를 민간용 선박에 맡기면서 경강 일대에 세곡 및 각종 물산을 수송하는 상업용 선박이 드나들었다. 대동법 시행 이후 경강상인들의 사선임운이 확대되고 한강 일대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강선의 왕래 또한 빈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