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계와 정원은 설치시기와 소속 관부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대개 정7품이나 종7품으로서 1, 2인씩 두었다.
고려 초기에는 목종 때 상식국(尙食局)·상약국(尙藥局)·상의국(尙衣局)·상사국(尙舍局)·상승국(尙乘局) 등에 설치되었으며, 문종 때 품계는 정7품으로 정원은 상의국에 1인, 나머지는 모두 2인씩으로 정비되었다.
고려 후기에는 1308년(충렬왕 34)의 관제개혁에서 대폭 증설되어 전의시(典儀寺)·사복시(司僕寺)·사의서(司醫署)·사온서(司醞署)·전악서(典樂署)·영조국(營造局)·잡작국(雜作局)·직염국(織染局)·의영고(義盈庫)·장흥고(長興庫)·상만고(常滿庫)·내알사(內謁司) 등에 새로 두었으며, 상식국과 상사국이 사선서(司膳署)와 사설서(司設署)로 개편되면서 그 관속으로 존속하였다.
이때 품계는 전의시·사복시·사온서·사선서·사설서와 고려 초기 이래의 상약국·상의국·상승국에서는 정7품, 나머지는 종7품이었다. 다만 내알사에서는 종6품, 전악서에서는 종9품이었다. 또한, 정원은 사선서가 3인이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1, 2인씩이었다.
1310년(충선왕 2)에는 이전의 상약국·상의국·상승국이 각각 장의서(掌醫署)·장복서(掌服署)·봉거서(奉車署)로 개편되면서 그 관속으로 존속하였으나, 영조국·잡작국·직염국에서는 장야서(掌冶署)·도교서(都校署)·도염서(都染署)로 개편됨과 동시에 폐지되었다. 그 뒤 사복시에서는 정7품에서 종7품으로, 전악서에서는 종9품에서 종7품으로 바뀌었으며, 내알사는 액정국(掖庭局)으로 개편되면서 직장이 폐지되는 변화가 있었다.
1356년(공민왕 5)의 대대적인 관제개혁에서는 관부의 명칭은 바뀌었으나 큰 변동 없이 그대로 존속하였으며, 다만 사복시·사온서·장흥고·상만고에서는 폐지되고 사농시(司農寺)와 군기감에서는 종7품 관직으로 신설되었다. 따라서, 이때 직장이 설치되었던 관부는 대상시(大常寺 : 典儀寺)·사농시·군기감·태의감(太醫監 : 典醫寺)·상식국·상의국(尙醫局)·상의국(尙衣局)·상승국·상사서(尙舍署)·대악서(大樂署 : 전악서)·의영고 등이었다.
그 뒤 1362년에는 사농시의 것이 폐지되고 사복시와 사온서에 다시 설치되었다. 1369년에는 사농시에 다시 설치되고 사복시와 사온서에서는 폐지되었다. 또한, 1372년에는 1362년의 경우와 같이 사농시에서 폐지되고 사복시와 사온서에 복치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관부들은 개칭을 반복하였지만, 관속의 구성에는 변함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