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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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원령은 1965년에 제정된 대학과 사범대학의 입학정원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한 법령이다. 고등교육 통제 정책의 한 사례로서, 정부가 대학의 입학정원 규제를 통해 대학의 양적, 질적 관리를 시도한 정책이다. 그러나 대학 정원의 통제는 대학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과도한 대학 입시 경쟁을 초래하였다.
대학정원령 (大學定員令)
대학정원령은 1965년에 제정된 대학과 사범대학의 입학정원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한 법령이다. 고등교육 통제 정책의 한 사례로서, 정부가 대학의 입학정원 규제를 통해 대학의 양적, 질적 관리를 시도한 정책이다. 그러나 대학 정원의 통제는 대학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과도한 대학 입시 경쟁을 초래하였다.
대학졸업정원제는1980년 대학의 정원보다 많은 신입생을 선발하고 초과 인원을 중도에 강제 탈락시켜 졸업시에 정원을 맞추는 교육정책이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과열 과외와 재수생 문제에 대한 해소 대책으로 1981년 입학생부터 졸업정원제를 전면 시행하였다. 졸업정원제는 대학 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시행되면서 많은 비판이 따랐고, 1987년에 폐지되었다.
대학졸업정원제 (大學卒業定員制)
대학졸업정원제는1980년 대학의 정원보다 많은 신입생을 선발하고 초과 인원을 중도에 강제 탈락시켜 졸업시에 정원을 맞추는 교육정책이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과열 과외와 재수생 문제에 대한 해소 대책으로 1981년 입학생부터 졸업정원제를 전면 시행하였다. 졸업정원제는 대학 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시행되면서 많은 비판이 따랐고, 1987년에 폐지되었다.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고희동 (高羲東)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신라시대 법당(法幢) 소속의 군병(軍兵)을 말한다. 신라 통일기(統一期)의 법당은 치안유지적 성격과 노역부대적 성격을 모두 지닌 부대였다. 법당의 군병은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전쟁에 동원되지만, 평상시에는 농사에 종사하면서 매년 농한기에 일정기간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다. 법공부는 법당에 편성된 농민들이 노역에 동원되었을 때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주로 축성(築城)·축제(築堤)작업이나 제방수리 등을 수행하였다. 축성이나 축제에 법공부로 동원되는 경우에는 같은 노역이라고 하더라도 군역(軍役)으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세역의 의무는 따로 부과되었다.
법공부 (法功夫)
신라시대 법당(法幢) 소속의 군병(軍兵)을 말한다. 신라 통일기(統一期)의 법당은 치안유지적 성격과 노역부대적 성격을 모두 지닌 부대였다. 법당의 군병은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전쟁에 동원되지만, 평상시에는 농사에 종사하면서 매년 농한기에 일정기간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다. 법공부는 법당에 편성된 농민들이 노역에 동원되었을 때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주로 축성(築城)·축제(築堤)작업이나 제방수리 등을 수행하였다. 축성이나 축제에 법공부로 동원되는 경우에는 같은 노역이라고 하더라도 군역(軍役)으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세역의 의무는 따로 부과되었다.
조선후기 승려 유일이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법집별행록절요과목병입사기 (法集別行錄節要科目幷入私記)
조선후기 승려 유일이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법집별행록절요과문』은 종밀의 책을 지눌이 요약하고 해설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 대해 조선 후기 상봉 정원이 붙인 과문이다. 이력과정의 사집과에 들어간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 대한 첫 주석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 현존하는 지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법집별행록절요과문 (法集別行錄節要科文)
『법집별행록절요과문』은 종밀의 책을 지눌이 요약하고 해설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 대해 조선 후기 상봉 정원이 붙인 과문이다. 이력과정의 사집과에 들어간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 대한 첫 주석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 현존하는 지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도서과목병입사기(都序科目幷入私記)』는 화엄종의 제5조인 종밀이 선종의 자료를 모아서 찬술한 『선원제전집』 100권에 대한 자서(自序)라고 할 수 있는 『도서』에 대해 과단을 나누고 차례대로 풀이한 주석서이다. "사기"란 경론, 어록 등을 해석한 글을 말하는 것으로 사사로운 견해를 덧붙인다는 뜻의 겸칭이다. "과목"이란 경론 등을 주석할 때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나눈 것이다. 유일은 『도서』에 대해 과목을 만들어 체계화하고 본문을 해석하여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었다.
도서과목병입사기 (都序科目幷入私記)
『도서과목병입사기(都序科目幷入私記)』는 화엄종의 제5조인 종밀이 선종의 자료를 모아서 찬술한 『선원제전집』 100권에 대한 자서(自序)라고 할 수 있는 『도서』에 대해 과단을 나누고 차례대로 풀이한 주석서이다. "사기"란 경론, 어록 등을 해석한 글을 말하는 것으로 사사로운 견해를 덧붙인다는 뜻의 겸칭이다. "과목"이란 경론 등을 주석할 때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나눈 것이다. 유일은 『도서』에 대해 과목을 만들어 체계화하고 본문을 해석하여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었다.
조선후기 『풍계집』을 저술한 승려.
명찰 (明察)
조선후기 『풍계집』을 저술한 승려.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속하는 섬이다. 동경 126°37′, 북위 34°06′에 위치하며, 면적은 32.99㎢, 해안선 길이는 41.0㎞이다. 섬 전역에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섬 중앙에 협소한 저지가 있어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북쪽 노화도와 마주한 청별 앞 바다에 매립 사업이 이루어져 행정 관서와 상가가 집중되어 중심지가 되고 있다. 예송리해수욕장과 중리해수욕장은 경치가 빼어나 이용객 수가 많다. 2008년 노화도와 보길도를 이어주는 보길대교가 완공되어 육로 이동이 가능해졌다.
보길도 (甫吉島)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속하는 섬이다. 동경 126°37′, 북위 34°06′에 위치하며, 면적은 32.99㎢, 해안선 길이는 41.0㎞이다. 섬 전역에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섬 중앙에 협소한 저지가 있어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북쪽 노화도와 마주한 청별 앞 바다에 매립 사업이 이루어져 행정 관서와 상가가 집중되어 중심지가 되고 있다. 예송리해수욕장과 중리해수욕장은 경치가 빼어나 이용객 수가 많다. 2008년 노화도와 보길도를 이어주는 보길대교가 완공되어 육로 이동이 가능해졌다.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는 11세기에 송나라 승려 정원(淨源)이 80권본 『화엄경』의 본문을 나누고 그에 해당하는 징관(澄觀)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를 함께 수록해 편집한 목판을, 고려 승려 의천이 가져와 14세기경 인쇄한 불교 논서이다. 이후 이 목판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방광불화엄경소 (大方廣佛華嚴經疏)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는 11세기에 송나라 승려 정원(淨源)이 80권본 『화엄경』의 본문을 나누고 그에 해당하는 징관(澄觀)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를 함께 수록해 편집한 목판을, 고려 승려 의천이 가져와 14세기경 인쇄한 불교 논서이다. 이후 이 목판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안채·사랑채·행랑채·창고 등으로 구성된 주택.
익산 김병순 고택 (益山 金炳順 古宅)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안채·사랑채·행랑채·창고 등으로 구성된 주택.
신라시대의 관서.
신원전 (新園典)
신라시대의 관서.
고려의 제34대 공양왕의 아버지로, 정원부원군에 봉해진 왕족.
왕균 (王鈞)
고려의 제34대 공양왕의 아버지로, 정원부원군에 봉해진 왕족.
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홍천 수타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내력을 수록하여 1861년에 간행한 사적기.
수타사 사적 (水墮寺 事蹟)
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홍천 수타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내력을 수록하여 1861년에 간행한 사적기.
순천만은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남해안으로 돌출한 고흥반도와 여수반도의 사이에 있는 만이다. 순천시 주요 하천인 동천과 이사천이 빠져나가는 하구로 많은 하천 미립 물질이 조류에 의해 바다 멀리 빠져나가지 못하고 연안에 재퇴적되면서 순천만 갯벌이 형성되었다. 갯벌은 간척으로 농경지가 되었지만 방조제 밖으로 성장을 계속해 염생 식물이 정착하고 갈대가 자라면서 흑두루미 등의 철새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보호되면서 부근에서 자연 친화적인 순천만 정원 박람회가 열렸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무대이기도 하다.
순천만 (順天灣)
순천만은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남해안으로 돌출한 고흥반도와 여수반도의 사이에 있는 만이다. 순천시 주요 하천인 동천과 이사천이 빠져나가는 하구로 많은 하천 미립 물질이 조류에 의해 바다 멀리 빠져나가지 못하고 연안에 재퇴적되면서 순천만 갯벌이 형성되었다. 갯벌은 간척으로 농경지가 되었지만 방조제 밖으로 성장을 계속해 염생 식물이 정착하고 갈대가 자라면서 흑두루미 등의 철새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보호되면서 부근에서 자연 친화적인 순천만 정원 박람회가 열렸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무대이기도 하다.
『유성룡 종가 문적』은 조선 전기 문신·학자 유성룡의 종손가에 소장된 유학서로 종가유물이다. 11종 22책으로 유성룡의 친필 문적, 임진왜란 기록, 명나라 장수들의 서화첩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주요 문서는 전쟁 중 보고서인 진사록, 퇴임 후 회고록인 난후잡록, 국왕에게 건의한 문서를 수록한 근포집, 명나라 장수들의 서신을 모은 당장서첩 등이다. 이 문적들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이며, 유성룡의 친필 고본은 서예로서도 가치가 높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유영하가(柳寧夏家)에 소장되어 있다.
유성룡 종가 문적 (柳成龍 宗家 文籍)
『유성룡 종가 문적』은 조선 전기 문신·학자 유성룡의 종손가에 소장된 유학서로 종가유물이다. 11종 22책으로 유성룡의 친필 문적, 임진왜란 기록, 명나라 장수들의 서화첩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주요 문서는 전쟁 중 보고서인 진사록, 퇴임 후 회고록인 난후잡록, 국왕에게 건의한 문서를 수록한 근포집, 명나라 장수들의 서신을 모은 당장서첩 등이다. 이 문적들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이며, 유성룡의 친필 고본은 서예로서도 가치가 높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유영하가(柳寧夏家)에 소장되어 있다.
의소(義沼)는 조선 후기에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한 교학승이자 화성 용주사(龍珠寺) 관련 기문을 쓴 편양파(鞭羊派) 승려이다. 용연사(龍淵寺)에서 출가하고 동화사(桐華寺)에서 활동하였으며, 상봉 정원(霜峰淨源)의 법을 이었다. 저서로 문집인 『인악집(仁岳集)』, 이력 과정의 사교과(四敎科) 및 화엄 관련 사기(私記) 등이 있다.
의소 (義沼)
의소(義沼)는 조선 후기에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한 교학승이자 화성 용주사(龍珠寺) 관련 기문을 쓴 편양파(鞭羊派) 승려이다. 용연사(龍淵寺)에서 출가하고 동화사(桐華寺)에서 활동하였으며, 상봉 정원(霜峰淨源)의 법을 이었다. 저서로 문집인 『인악집(仁岳集)』, 이력 과정의 사교과(四敎科) 및 화엄 관련 사기(私記) 등이 있다.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은 조선 후기 승려 설암 추붕(雪巖秋鵬)이 종밀(宗密)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를 분과하여 주석을 붙인 책으로 1740년에 간행되었다. 추붕은 편양파의 화엄 종장 월저 도안(月渚道安)의 제자로서 본서 외에도 『법집별행록절요사기(法集別行錄節要私記)』 등을 지었다.
선원제전집도서과평 (禪源諸詮集都序科評)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은 조선 후기 승려 설암 추붕(雪巖秋鵬)이 종밀(宗密)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를 분과하여 주석을 붙인 책으로 1740년에 간행되었다. 추붕은 편양파의 화엄 종장 월저 도안(月渚道安)의 제자로서 본서 외에도 『법집별행록절요사기(法集別行錄節要私記)』 등을 지었다.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은 당나라 전기의 선종 승려 현각(玄覺, 665~713)이 승려의 수행 태도와 수행법을 10가지의 주제로 이야기한 책이다. 현각이 입적한 후 재가제자인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靜)이 책을 편찬하였다. 국내에는 일찍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1381년(우왕 7)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기화(己和, 1376-1433)가 해설을 붙인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2권)를 찬술하였고, 1464년(세조 10)에는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을 간행하였다.
선종영가집 (禪宗永嘉集)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은 당나라 전기의 선종 승려 현각(玄覺, 665~713)이 승려의 수행 태도와 수행법을 10가지의 주제로 이야기한 책이다. 현각이 입적한 후 재가제자인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靜)이 책을 편찬하였다. 국내에는 일찍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1381년(우왕 7)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기화(己和, 1376-1433)가 해설을 붙인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2권)를 찬술하였고, 1464년(세조 10)에는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을 간행하였다.
의천은 고려전기 국사, 승통, 국청사 제1대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055년(문종 9)에 태어나 1101년(숙종 6)에 사망했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자원하여 11세에 출가했다. 송나라에 유학해 수도 변경의 여러 절에 머물면서 화엄과 천태 등의 교학에 대해 토론하며 견문을 넓혔다. 1086년(선종 3) 불교 전적 3000여 권을 가지고 귀국한 뒤,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불교전적 정비·편찬에 힘썼다. 1097년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개립하여 교단의 통일과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의천 (義天)
의천은 고려전기 국사, 승통, 국청사 제1대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055년(문종 9)에 태어나 1101년(숙종 6)에 사망했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자원하여 11세에 출가했다. 송나라에 유학해 수도 변경의 여러 절에 머물면서 화엄과 천태 등의 교학에 대해 토론하며 견문을 넓혔다. 1086년(선종 3) 불교 전적 3000여 권을 가지고 귀국한 뒤,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불교전적 정비·편찬에 힘썼다. 1097년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개립하여 교단의 통일과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