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김(金) 씨로, 경상도 창원에서 1685년에 태어났다. 법호는 회암(晦庵), 법명은 정혜(定慧)이다.
9세에 스스로 뜻을 품고 범어사(梵魚寺)의 자수(自守)에게 출가했다.
가야산에 있던 부휴계 보광 원민(葆光圓旻)에게 구족계를 받고 경전을 배웠다. 편양파 설암 추붕(雪巖秋鵬)이 묘향산에서 호남으로 와서 강석을 열자 원민의 허락을 얻어 참여했다. 돌아온 그에게 원민이 의발을 전수해 주었고, 1711년(숙종 37)에는 율사(栗寺)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정혜는 환성 지안(喚醒志安) 등 당대의 선승 및 학승들에게 두루 배웠으며 금강산에서 참선에 정진했고, 석왕사(釋王寺) · 명봉사(鳴鳳寺) · 청암사(靑巖寺) · 벽송사(碧松寺) 등에서 강학에 매진했다. 매일 경전을 암송했는데 한 번에 500행을 외웠다고 하며, 화엄학에도 매우 뛰어나 모운 진언(慕雲震言, 1622-1703) 이후 부휴계를 대표하는 교학 종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만년에 청암사에 주석하다가 1741년(영조 17) 5월 20일에 입적했고, 김천 불영산 쌍계사(雙溪寺)에 비가 세워졌다.
저술로는 『선원집도서착병(禪源集都序著柄)』 · 『별행록사기화족(別行錄私記畵足)』 · 『화엄경소은과 華嚴經疏隱科』 · 『제경론소구절(諸經論疏句絶)』 등이 있다. 앞의 두 책은 현재 『선원집도서과기(禪源集都序科記)』 · 『법집별행록절요사기해(法集別行錄節要私記解)』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있다.
정혜는 화엄에 매우 정통하여 수십 번 강의를 했고, 중국 화엄종의 오조 종밀(宗密)의 후신으로 추앙되면서 ‘화엄종 회암 장로’라고 불렸다. 18세기 후반 편양파 교학의 대가인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은 “『도서』와 『절요』에 대한 사기(私記)가 옛날에는 없다가 근래에 상봉 정원(霜峯淨源)이 주석을 남겼지만 너무 간략하고 설암 추붕과 회암 정혜의 사기가 상세히 갖추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회암의 것이 가장 뛰어나 제방에서 으뜸으로 삼았다.”라고 하여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