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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석장리 유적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해발 70∼75m 정도의 구릉 사면에 7개소의 철 생산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된 최초의 고대 철 생산 유적으로, 지상식 대형 상형로(箱形爐), 반지하식 원형로 등 다양한 형태의 고대 제철로 26기가 확인되었다. 철의 제련과 정련, 단야(鍛冶) 등 일련의 철생산 공정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서 고대 제철의 입지 선정과 철 생산 체계 및 조업 형태 등에 대한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초기 백제의 생산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진천 석장리 유적 (鎭川 石帳里 遺蹟)
진천 석장리 유적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해발 70∼75m 정도의 구릉 사면에 7개소의 철 생산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된 최초의 고대 철 생산 유적으로, 지상식 대형 상형로(箱形爐), 반지하식 원형로 등 다양한 형태의 고대 제철로 26기가 확인되었다. 철의 제련과 정련, 단야(鍛冶) 등 일련의 철생산 공정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서 고대 제철의 입지 선정과 철 생산 체계 및 조업 형태 등에 대한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초기 백제의 생산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야철지는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이다. 제철유적이라고도 부른다. 작업 공정에 따라 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등으로 구분된다. 초기 야철지는 해안가나 경주를 비롯한 도성 주변에 위치하였으나 점차 철광산을 중심으로 생산유적이 옮겨졌다. 철소가 설치된 충주 등 여러 지역에서 철광석보다는 사철을 많이 이용하여 철을 생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철을 공납물로 진상하게 되면서 철을 생산하는 철장을 설치하였다. 철기 생산 기술과 철기문화의 변화상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야철지 (冶鐵址)
야철지는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이다. 제철유적이라고도 부른다. 작업 공정에 따라 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등으로 구분된다. 초기 야철지는 해안가나 경주를 비롯한 도성 주변에 위치하였으나 점차 철광산을 중심으로 생산유적이 옮겨졌다. 철소가 설치된 충주 등 여러 지역에서 철광석보다는 사철을 많이 이용하여 철을 생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철을 공납물로 진상하게 되면서 철을 생산하는 철장을 설치하였다. 철기 생산 기술과 철기문화의 변화상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충주칠금동야철유적(忠州漆琴洞冶鐵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정만이 확인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제련로는 30여 기에 달해 국내 최대 유적이다. 용광로를 만들 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땅을 깊게 파고 바닥과 측면에 목재를 빽빽하게 채운 후 그 위로 노를 조성한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칠금동식 제련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충주 칠금동 야철유적 (忠州 漆琴洞 冶鐵遺蹟)
충주칠금동야철유적(忠州漆琴洞冶鐵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정만이 확인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제련로는 30여 기에 달해 국내 최대 유적이다. 용광로를 만들 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땅을 깊게 파고 바닥과 측면에 목재를 빽빽하게 채운 후 그 위로 노를 조성한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칠금동식 제련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