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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직은 북한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 북한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3년 청년운동에 투신한 이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두 번의 수형 생활(1930년 6년형, 1939년 8년형)을 치른 후 광복을 맞아 출감하였다. 광복 직후 재건조선공산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피신해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을,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박헌영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후 평안북도 삭주의 농장으로 추방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권오직 (權五稷)
권오직은 북한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 북한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3년 청년운동에 투신한 이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두 번의 수형 생활(1930년 6년형, 1939년 8년형)을 치른 후 광복을 맞아 출감하였다. 광복 직후 재건조선공산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피신해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을,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박헌영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후 평안북도 삭주의 농장으로 추방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이영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청년총동맹 상무위원, 조선공산당 정치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표단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관료·독립운동가이다. 1889년에 출생하여 1960년 사망했다. 중국 남경의 강녕제일실업학교 재학 중 조선광복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0년 귀국 후 1923년 고려공산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1927년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여했으며, 195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되었다. 1956년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장으로서 소련을 방문했다.
이영 (李英)
이영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청년총동맹 상무위원, 조선공산당 정치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표단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관료·독립운동가이다. 1889년에 출생하여 1960년 사망했다. 중국 남경의 강녕제일실업학교 재학 중 조선광복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0년 귀국 후 1923년 고려공산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1927년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여했으며, 195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되었다. 1956년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장으로서 소련을 방문했다.
1945년 해방 직후 여운형이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던 중도좌파 계열의 정치정당.
조선인민당 (朝鮮人民黨)
1945년 해방 직후 여운형이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던 중도좌파 계열의 정치정당.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최익한 (崔益翰)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