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지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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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서초는 1868년(고종 5) 이후 약 10년간 임금이 각 도의 감사(監司)와 유수(留守) 및 통제사(統制使)·경기수사(京畿水使)·총융사(摠戎使) 등에게 내린 36편의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초록(抄錄)한 책이다. 원문서와 다른 점은 지제교(知製敎)를 수록하고 연월일을 생략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는 교서와 유서를 문서로서의 기능보다는 수사법, 문장 형식에 관심을 두고 편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교서초 (敎書抄)
교서초는 1868년(고종 5) 이후 약 10년간 임금이 각 도의 감사(監司)와 유수(留守) 및 통제사(統制使)·경기수사(京畿水使)·총융사(摠戎使) 등에게 내린 36편의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초록(抄錄)한 책이다. 원문서와 다른 점은 지제교(知製敎)를 수록하고 연월일을 생략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는 교서와 유서를 문서로서의 기능보다는 수사법, 문장 형식에 관심을 두고 편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수찬 (副修撰)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 (副應敎)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