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명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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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사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전라남도 조계산 송광사에서 활동한 16명의 승려이다. 고려시대에 수선사(修禪社)의 사주(社主)로서 국사의 칭호를 받았던 15인과 조선 초기에 송광사를 중창하였던 고봉(高峰)을 합쳐서 이른다. 이들의 영정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십육국사의 배출로 인하여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십육국사 (十六國師)
십육국사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전라남도 조계산 송광사에서 활동한 16명의 승려이다. 고려시대에 수선사(修禪社)의 사주(社主)로서 국사의 칭호를 받았던 15인과 조선 초기에 송광사를 중창하였던 고봉(高峰)을 합쳐서 이른다. 이들의 영정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십육국사의 배출로 인하여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혼원(混元)은 수선사 4세로 무신 정권기와 원 간섭기에 활동한 선승이다. 그는 사굴산문에 출가하여 수선사 2세 혜심, 3세 몽여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최씨 정권의 후원을 받아 선원사에 머물러 항몽 의식을 고취하고 최씨 정권의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혜심 대까지 최씨 정권과 그는 최우에 의해 정혜사 주지와 선원사 법주가 되었으며, 대선사에 제수되었다. 이어 최항의 영향력으로 수선사 사주가 되었다. 원종 대에 왕사가 되었으나 무신 정권이 몰락하고 수선사가 퇴조하자 혼원도 하산소인 와룡사로 물러나 1271년에 입적하였다.
혼원 (混元)
혼원(混元)은 수선사 4세로 무신 정권기와 원 간섭기에 활동한 선승이다. 그는 사굴산문에 출가하여 수선사 2세 혜심, 3세 몽여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최씨 정권의 후원을 받아 선원사에 머물러 항몽 의식을 고취하고 최씨 정권의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혜심 대까지 최씨 정권과 그는 최우에 의해 정혜사 주지와 선원사 법주가 되었으며, 대선사에 제수되었다. 이어 최항의 영향력으로 수선사 사주가 되었다. 원종 대에 왕사가 되었으나 무신 정권이 몰락하고 수선사가 퇴조하자 혼원도 하산소인 와룡사로 물러나 1271년에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