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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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불교
인물
고려 후기, 수선사 4세로 활동한 선승.
이칭
시호
진명국사(眞明國師)
봉호
충경(沖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191년
사망 연도
1271년
출생지
황해도 수안
내용 요약

혼원(混元)은 수선사 4세로 무신 정권기와 원 간섭기에 활동한 선승이다. 그는 사굴산문에 출가하여 수선사 2세 혜심, 3세 몽여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최씨 정권의 후원을 받아 선원사에 머물러 항몽 의식을 고취하고 최씨 정권의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혜심 대까지 최씨 정권과 그는 최우에 의해 정혜사 주지와 선원사 법주가 되었으며, 대선사에 제수되었다. 이어 최항의 영향력으로 수선사 사주가 되었다. 원종 대에 왕사가 되었으나 무신 정권이 몰락하고 수선사가 퇴조하자 혼원도 하산소인 와룡사로 물러나 1271년에 입적하였다.

목차
정의
고려 후기, 수선사 4세로 활동한 선승.
생애와 활동 사항

혼원(混元)은 법명이다. 왕사(王師) 책호(冊號)는 충경(沖鏡)이고, 시호(諡號)가 진명 국사(眞明國師)이다. 아버지는 이사덕(師德)이며, 황해도 수안현(遂安縣)의 토성으로 정팔품인 경시서승(京市署丞)을 지냈다. 어머니는 합문기후(閤門祗候)를 지낸 김열보(金閱甫)의 딸이다.

황해도 수안(遂安)에서 1191년(명종 21)에 출생하여 1271년(원종 12)에 입적하였다. 13세에 외삼촌인 종헌(宗軒) 선사에게 나아가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았다. 승과 상상과(上上科)에 급제한 후에 쌍봉사(雙峰寺) 청우(靑牛)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다. 이어 수선사 2세인 혜심(慧諶)의 문하에 들어갔고, 청진 국사(淸眞國師) 몽여(夢如)의 가르침을 받았다.

최우(崔瑀)가 주청하여 혼원에게 삼중대사(三重大師)를 내리고 정혜사(定慧社) 주지로 임명하였으나 사양하였다. 1245년(고종 32)에 최우가 선원사(禪源社)를 창건하고 혼원에게 주맹(主盟)을 청하였다. 다음 해에 선원사에 들어갔고, 대선사가 되었다. 1252년(고종 39)에 청진 국사 몽여가 입적한 후에 수선사 4세가 되었다. 1258년(고종 45)에 왕명으로 그를 단속사(斷俗寺)에 모셨고, 이어 자운사(慈雲寺)로 가서 1259년에 왕사(王師)로 책봉되었다.

원종이 즉위한 후에 와룡사(臥龍寺)를 하산소로 삼아 물러났다. 1271년(원종 12)에 세수 80세, 법랍 68세로 입적하였다. 원종이 진명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국사로 추증하고, 주3를 보광(普光)이라 하였다.

혼원의 생애와 활동에서 최씨 정권과의 관계가 주목된다. 혜심 대까지 최씨 정권과 그는 최우에 의해 정혜사 주지와 선원사 법주가 되었으며, 대선사에 제수되었다. 이어 최항의 영향력으로 수선사 사주가 되었다. 혼원은 강화에 세워진 최우의 원찰이자 대몽 항쟁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한 선원사에 주석하면서 항몽 의식을 고취하고 최씨 정권의 사상적 배경으로 존재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동문선(東文選)』

단행본

金坵, 『조선금석총람』(조선총독부, 1919)
허흥식, 『고려불교사연구』(일조각, 1986)
채상식, 『고려후기 불교사 연구』(일조각, 1991)
조명제, 『고려후기 간화선 연구』(혜안, 2004)
조명제 외, 『역주 조계산송광사사고 인물부』(혜안, 2007)
주석
주1

고려시대 국가 의식을 담당하던 관직.

주2

삼중대사에는 선교의 구분이 없었다.

주3

승려의 별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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