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조계산 수선사 제3세 국사 승려.
내용
이때의 고려 불교는 거란과 몽고의 침략으로 기복불교(祈福佛敎)가 크게 성행하였던 시기로서, 궁중에서는 거의 매월 복을 비는 여러가지 도량(道場)이 열렸고, 황룡사구층탑이 몽고에 의하여 불타는 등 침체일로에 있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수선사를 맡아 지눌(知訥)에 의해서 선양된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또한, 스승 혜심의 비를 세우고, 혜심의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열람한 뒤 거기에 347칙(則)을 첨가하여 보완하는 등, 참신한 선풍을 잇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리고 당대의 법왕으로 추앙받으면서 혼원(混元)·천영(天英) 등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1252년 수선사 사주직(社主職)을 제4세 혼원에게 물려주고 입적하였다.
당대의 문호인 이규보(李奎報)와 자주 교유하였다. 언제인가 시자(侍者) 두 사람을 이규보에게 보내어 정이안(丁而安)의 흑죽(黑竹) 그림을 구하매 이규보가 흑죽 2간(幹) 그림을 보내면서 찬한 글이 『동문선』 권51에 전하고 있다. 이규보가 몽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몽여가 선사와 대선사의 승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호는 청진국사(淸眞國師)이다.
참고문헌
- 『동문선(東文選)』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 「高麗曹溪山松廣寺十六國師に就いて」(管野銀八, 『청구학보(靑丘學報)』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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