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개창한 선승.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학문
그런데 이몽유가 쓴 양부의 제자 긍양(兢讓)의 비문에는, 긍양이 900년(효공왕 4)에 중국에 유학하여 석상경제(石霜慶諸)의 제자인 도연(道緣)의 법맥을 이었으며, 지증 도헌(지선)은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신감(神鑑)-혜명(慧明)의 법맥을 이었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당에 유학하지 않았던 지선을 비롯해 지선의 제자까지 중국 선종의 법맥에 연결한 것은 선종 수용 초기와 달리 신라 말에 이르러 나타난 변화이다. 구산선문이 중국 선종의 법맥을 계승한 것을 강조한 이러한 변화는 선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신라 선종사 연구를 살펴보면, 북종선과 남종선의 차이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북종선과 남종선은 사상적으로 공유되는 요소도 있다. 북종의 선승들은 원래부터 일체중생은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번뇌에 덮여 있다고 보았다. 북종선은 수행에 의해 번뇌를 씻으면 불성은 스스로 드러난다고 본다. 남종선의 승려 신회(神會)도 불성은 본래 가진 것이라는 북종선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회는 단계적인 수행 후에 불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불성은 앎의 작용이자 마음 속 깊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 부정'을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조계에서 잘 드러난다. 마조계는 수행을 통해 미혹한 마음을 부처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마음 그대로가 도이기 때문에 수행이 필요없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최치원(崔致遠),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 1919)
- 이몽유(李夢游), 「고려국상주희양산봉암사왕사증시정진대사원오지탑비명병서(高麗國尙州曦陽山鳳巖寺王師贈諡靜真大師圓悟之塔碑銘幷序)」, (『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 191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 趙東元 編, 『韓國金石文大系 3』(원광대 출판국, 1983)
- 許興植 編, 『韓國金石全文 古代篇』(아세아문화사, 1984)
단행본
- 忽滑谷快天, 『朝鮮禪敎史』(春秋社, 1930)
- 崔英成, 『註解四山碑銘』(亞細亞文化社, 1987)
- 김두진, 『신라 하대 선종 사상사 연구』(일조각, 2007)
- 조범환, 『나말 여초 선종 산문 개창 연구』(경인문화사, 2008)
논문
- 고익진, 「신라 하대의 선 전래」(『한국고대불교사상사』,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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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통일 신라 이후 불교가 크게 흥할 때, 승려들이 중국에서 달마의 선법(禪法)을 받아 가지고 와 그 문풍(門風)을 지켜 온 아홉 산문. 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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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선종 구산문의 하나. 신라 헌강왕 때 도현이 경상북도 문경시에 개산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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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중국 당나라의 선승(709~788). 남종선(南宗禪) 발전에 공이 크며,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라고 주창하여 생활 속의 선(禪)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저서에 ≪어록(語錄)≫ 1권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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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 특히 사람에 대하여 쓰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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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개인이 소유하는 논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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