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

불교
인물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개창한 선승.
이칭
도헌(道憲)
시호
지증대사(智證大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824년
사망 연도
882년
출생지
경상북도 경주시
내용 요약

지선(智詵)은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연 선승이다. 대부분의 선승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온 것과 달리 지선은 유학 경험이 없었고, 북종선을 계승하였다. 그의 사후에 희양산문에서 그의 법계를 마조계로 설정한 것은 당시 선종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정의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개창한 선승.
가계 및 인적사항

도헌 지선(道憲智詵, 824~882)은 신라 하대 주1의 하나인 주2을 개창한 선승이다. 지선은 자이며, 속성은 김(金), 호는 도헌(道憲), 시호는 지증대사(智證大師)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며, 아버지는 김찬괴(贊瓌), 어머니는 이씨(伊氏)이다. 도헌의 신분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이 있으나, 출가 후 자신이 소유하던 주6 12구(區) 500결(結)을 절에 기증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신분은 진골로 추정된다.

주요 활동

832년(흥덕왕 7), 지선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한찬(韓粲) 김억훈(金嶷勳)의 도움을 받아 9세에 부석사(浮石寺)로 출가하여 범체 대덕(梵體大德)에게 화엄교학을 배웠다. 840년(문성왕 2)에 경의 율사(瓊儀律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계람산(鷄藍山) 수석사(水石寺)에서 머물렀다. 경문왕(景文王)이 사신을 보내어 그를 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864년(경문왕 4)에 단의장옹주(端儀長翁主)의 청에 따라 현계산(賢溪山) 안락사(安樂寺)의 주지가 되었다. 867년(경문왕 7)에 단의장옹주가 안락사에 논과 밭, 노비를 내려 주었고, 도헌 자신도 개인 소유였던 토지 500결을 절에 기증했다. 이후 심충(沈忠)의 청으로 희양산에 가서 봉암사(鳳巖寺)를 창건하였으며, 헌강왕의 부름을 받고 월지궁(月池宮)에서 왕에게 선(禪)을 강의하였다. 다음 해 안락사에서 59세로 입적하였다.

학문

지선은 쌍봉 도신(雙峰道信)-법랑(法朗)-신행(信行)-준범(遵範)-혜은(慧隱)을 계승하였으며, 북종선(北宗禪)을 수용하였다. 그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을 개창한 다른 선승들과 달리 유일하게 당에 유학하지 않고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연 인물이다. 그의 제자로는 양부(楊孚), 성견(性蠲), 계휘(繼徽) 등이 있다.

그런데 이몽유가 쓴 양부의 제자 긍양(兢讓)의 비문에는, 긍양이 900년(효공왕 4)에 중국에 유학하여 석상경제(石霜慶諸)의 제자인 도연(道緣)의 법맥을 이었으며, 지증 도헌(지선)은 주3의 제자인 신감(神鑑)-혜명(慧明)의 법맥을 이었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당에 유학하지 않았던 지선을 비롯해 지선의 제자까지 중국 선종의 법맥에 연결한 것은 선종 수용 초기와 달리 신라 말에 이르러 나타난 변화이다. 구산선문이 중국 선종의 법맥을 계승한 것을 강조한 이러한 변화는 선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신라 선종사 연구를 살펴보면, 북종선과 남종선의 차이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북종선과 남종선은 사상적으로 공유되는 요소도 있다. 북종의 선승들은 원래부터 주4은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번뇌에 덮여 있다고 보았다. 북종선은 수행에 의해 번뇌를 씻으면 불성은 스스로 드러난다고 본다. 남종선의 승려 신회(神會)도 불성은 본래 가진 것이라는 북종선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회는 단계적인 수행 후에 불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불성은 앎의 작용이자 마음 속 깊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 부정'을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조계에서 잘 드러난다. 마조계는 수행을 통해 미혹한 마음을 부처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마음 그대로가 도이기 때문에 수행이 필요없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최치원(崔致遠),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 1919)
이몽유(李夢游), 「고려국상주희양산봉암사왕사증시정진대사원오지탑비명병서(高麗國尙州曦陽山鳳巖寺王師贈諡靜真大師圓悟之塔碑銘幷序)」, (『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 1919)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趙東元 編, 『韓國金石文大系 3』(원광대 출판국, 1983)
許興植 編, 『韓國金石全文 古代篇』(아세아문화사, 1984)

단행본

忽滑谷快天, 『朝鮮禪敎史』(春秋社, 1930)
崔英成, 『註解四山碑銘』(亞細亞文化社, 1987)
김두진, 『신라 하대 선종 사상사 연구』(일조각, 2007)
조범환, 『나말 여초 선종 산문 개창 연구』(경인문화사, 2008)

논문

고익진, 「신라 하대의 선 전래」(『한국고대불교사상사』,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9)
주석
주1

통일 신라 이후 불교가 크게 흥할 때, 승려들이 중국에서 달마의 선법(禪法)을 받아 가지고 와 그 문풍(門風)을 지켜 온 아홉 산문. 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다. 우리말샘

주2

선종 구산문의 하나. 신라 헌강왕 때 도현이 경상북도 문경시에 개산하였다. 우리말샘

주3

중국 당나라의 선승(709~788). 남종선(南宗禪) 발전에 공이 크며,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라고 주창하여 생활 속의 선(禪)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저서에 ≪어록(語錄)≫ 1권이 있다. 우리말샘

주4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 특히 사람에 대하여 쓰인다. 우리말샘

주6

개인이 소유하는 논밭.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