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헌 지선(道憲智詵, 824~882)은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개창한 선승이다. 지선은 자이며, 속성은 김(金), 호는 도헌(道憲), 시호는 지증대사(智證大師)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며, 아버지는 김찬괴(贊瓌), 어머니는 이씨(伊氏)이다. 도헌의 신분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이 있으나, 출가 후 자신이 소유하던 전장(田莊) 12구(區) 500결(結)을 절에 기증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신분은 진골로 추정된다.
832년(흥덕왕 7), 지선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한찬(韓粲) 김억훈(金嶷勳)의 도움을 받아 9세에 부석사(浮石寺)로 출가하여 범체 대덕(梵體大德)에게 화엄교학을 배웠다. 840년(문성왕 2)에 경의 율사(瓊儀律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계람산(鷄藍山) 수석사(水石寺)에서 머물렀다. 경문왕(景文王)이 사신을 보내어 그를 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864년(경문왕 4)에 단의장옹주(端儀長翁主)의 청에 따라 현계산(賢溪山) 안락사(安樂寺)의 주지가 되었다. 867년(경문왕 7)에 단의장옹주가 안락사에 논과 밭, 노비를 내려 주었고, 도헌 자신도 개인 소유였던 토지 500결을 절에 기증했다. 이후 심충(沈忠)의 청으로 희양산에 가서 봉암사(鳳巖寺)를 창건하였으며, 헌강왕의 부름을 받고 월지궁(月池宮)에서 왕에게 선(禪)을 강의하였다. 다음 해 안락사에서 59세로 입적하였다.
지선은 쌍봉 도신(雙峰道信)-법랑(法朗)-신행(信行)-준범(遵範)-혜은(慧隱)을 계승하였으며, 북종선(北宗禪)을 수용하였다. 그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을 개창한 다른 선승들과 달리 유일하게 당에 유학하지 않고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연 인물이다. 그의 제자로는 양부(楊孚), 성견(性蠲), 계휘(繼徽) 등이 있다.
그런데 이몽유가 쓴 양부의 제자 긍양(兢讓)의 비문에는, 긍양이 900년(효공왕 4)에 중국에 유학하여 석상경제(石霜慶諸)의 제자인 도연(道緣)의 법맥을 이었으며, 지증 도헌(지선)은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신감(神鑑)-혜명(慧明)의 법맥을 이었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당에 유학하지 않았던 지선을 비롯해 지선의 제자까지 중국 선종의 법맥에 연결한 것은 선종 수용 초기와 달리 신라 말에 이르러 나타난 변화이다. 구산선문이 중국 선종의 법맥을 계승한 것을 강조한 이러한 변화는 선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신라 선종사 연구를 살펴보면, 북종선과 남종선의 차이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북종선과 남종선은 사상적으로 공유되는 요소도 있다. 북종의 선승들은 원래부터 일체중생은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번뇌에 덮여 있다고 보았다. 북종선은 수행에 의해 번뇌를 씻으면 불성은 스스로 드러난다고 본다. 남종선의 승려 신회(神會)도 불성은 본래 가진 것이라는 북종선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회는 단계적인 수행 후에 불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불성은 앎의 작용이자 마음 속 깊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 부정'을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조계에서 잘 드러난다. 마조계는 수행을 통해 미혹한 마음을 부처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마음 그대로가 도이기 때문에 수행이 필요없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