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처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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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리로 『삼국유사』 처용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로 헌강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정사를 도왔다. 역신이 처용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해 동침했으나 노여워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자 감동하여 향후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 앞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한다. 「처용가」와 처용무는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헌강왕 대의 사치와 가무 성행, 호국신의 잦은 출현 등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는 설화이다.
처용 (處容)
처용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리로 『삼국유사』 처용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로 헌강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정사를 도왔다. 역신이 처용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해 동침했으나 노여워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자 감동하여 향후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 앞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한다. 「처용가」와 처용무는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헌강왕 대의 사치와 가무 성행, 호국신의 잦은 출현 등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는 설화이다.
처용은 신라로부터 전해진 고려의 향악이다. 그러나 처용이라는 명칭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설화의 주인공이자 이 주인공이 부른 노래, 그리고 고려시대 이후 새롭게 지어진 노래 등도 가리킨다. 처용 설화의 내용에 의하면 처용은 용왕의 아들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는데, 어느날 역귀가 집에 침입하였으나 넓은 아량을 보여 역귀 스스로 깨우치고 물러나게 했다. 이후 처용은 역귀를 쫓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노래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이제현의 「처용(가)」가 있다.
처용 (處容)
처용은 신라로부터 전해진 고려의 향악이다. 그러나 처용이라는 명칭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설화의 주인공이자 이 주인공이 부른 노래, 그리고 고려시대 이후 새롭게 지어진 노래 등도 가리킨다. 처용 설화의 내용에 의하면 처용은 용왕의 아들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는데, 어느날 역귀가 집에 침입하였으나 넓은 아량을 보여 역귀 스스로 깨우치고 물러나게 했다. 이후 처용은 역귀를 쫓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노래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이제현의 「처용(가)」가 있다.
헌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75~886년이며 아버지 경문왕을 이어 즉위했다. 부왕 때부터 시작된 국학 진흥활동에 박차를 가해 국학에 적극적이던 6두품 신분층의 정치적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들이 국왕의 지지세력으로 활약했다. 불력에 의한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도 도모하여 황룡사에 백고좌강경을 설치하고 친히 가서 듣는 등 불교진흥에도 힘썼다. 백성들의 지붕은 기와로 이어졌고, 밥할 때 숯을 때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신라 최전성기의 왕으로, 당나라와 일본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헌강왕 (憲康王)
헌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75~886년이며 아버지 경문왕을 이어 즉위했다. 부왕 때부터 시작된 국학 진흥활동에 박차를 가해 국학에 적극적이던 6두품 신분층의 정치적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들이 국왕의 지지세력으로 활약했다. 불력에 의한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도 도모하여 황룡사에 백고좌강경을 설치하고 친히 가서 듣는 등 불교진흥에도 힘썼다. 백성들의 지붕은 기와로 이어졌고, 밥할 때 숯을 때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신라 최전성기의 왕으로, 당나라와 일본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