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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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정인흥 (鄭寅興)
정인흥은 대한제국기 의병 재판에 참가한 구한말의 관료, 법조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를 지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자 중부 지방의 의병을 해산시키기 위한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의병 재판에 참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김우영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다가 관료로 변신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6년 동래부에서 태어났으며, 나혜석과 결혼하였다. 1919년 교토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개업 후 독립운동가 관련 사건들을 변호하였으나, 1921년 일본 외무성 관리로 변신하여 안둥현 주재 일본영사관 부영사를 역임하였다. 1937년 이후 일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수차례 훈장을 받았다. 1944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김우영 (金雨英)
김우영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다가 관료로 변신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6년 동래부에서 태어났으며, 나혜석과 결혼하였다. 1919년 교토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개업 후 독립운동가 관련 사건들을 변호하였으나, 1921년 일본 외무성 관리로 변신하여 안둥현 주재 일본영사관 부영사를 역임하였다. 1937년 이후 일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수차례 훈장을 받았다. 1944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