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토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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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8일에 결성된 전국적인 농민운동 연합체.
전국농민조합총연맹 (全國農民組合總聯盟)
1945년 12월 8일에 결성된 전국적인 농민운동 연합체.
고용된 농민이나 토지분배 대상자로 구성되어 있는 북한의 순수 농민조직이다. 북조선 빈농위원회의의 명칭은 농촌위원회다. 1946년 1월 31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북조선연맹’이 결성되고, 단위조직의 성격이 정식으로 ‘농민위원회’로 규정되었다. 이후 조직은 통칭 ‘북조선농민연맹’이라 불리게 되었다. 동리마다 ‘농민총회’가 개최되었으며 여기에서 빈농․소작인․농업노동자 가운데 열성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농촌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토지개혁 주체를 주민 선거에서 선출되는 ‘농촌위원회’로 한 사실이 주목된다.
빈농위원회 (貧農委員會)
고용된 농민이나 토지분배 대상자로 구성되어 있는 북한의 순수 농민조직이다. 북조선 빈농위원회의의 명칭은 농촌위원회다. 1946년 1월 31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북조선연맹’이 결성되고, 단위조직의 성격이 정식으로 ‘농민위원회’로 규정되었다. 이후 조직은 통칭 ‘북조선농민연맹’이라 불리게 되었다. 동리마다 ‘농민총회’가 개최되었으며 여기에서 빈농․소작인․농업노동자 가운데 열성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농촌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토지개혁 주체를 주민 선거에서 선출되는 ‘농촌위원회’로 한 사실이 주목된다.
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충선왕 (忠宣王)
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1946년 농민 김제원이 수확한 쌀을 국가에 헌납한 것을 계기로 북한 전 지역에서 농민이 벌인 운동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이 땅을 분여받았다. 이때 김제원은 그 해 수확한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하였다. 수십만의 북한 농민들이 불타는 애국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에 참여하였다. 세수 확대는 물론 새로 출범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추진한 운동이다.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만경대혁명학원을 건립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인민정권과 노동자·농민의 동맹관계를 더욱 더 굳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애국미 헌납운동 (愛國米 獻納運動)
1946년 농민 김제원이 수확한 쌀을 국가에 헌납한 것을 계기로 북한 전 지역에서 농민이 벌인 운동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이 땅을 분여받았다. 이때 김제원은 그 해 수확한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하였다. 수십만의 북한 농민들이 불타는 애국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에 참여하였다. 세수 확대는 물론 새로 출범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추진한 운동이다.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만경대혁명학원을 건립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인민정권과 노동자·농민의 동맹관계를 더욱 더 굳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