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미 헌납운동 ( )

애국미헌납운동
애국미헌납운동
정치·법제
사건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통해 땅을 분여받은 농민 김제원(金濟元)이 그 해 수확한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한 것을 계기로 북한 전 지역의 농민이 벌인 운동.
이칭
이칭
김제원애국미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통해 땅을 분여받은 농민 김제원(金濟元)이 그 해 수확한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한 것을 계기로 북한 전 지역의 농민이 벌인 운동.
개설

해방 직후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실시한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갖지 못하거나 적게 갖고 있던 피지배계층이 땅을 분여받았다는 사실을 서전하는 한편, 새로 출범한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추진한 운동이다. 김제원이라는 농민을 모델로 하여 새로 토지를 갖게 될 농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경작물을 국가에 헌납하도록 함으로써 세수(稅收)를 확대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역사적 배경

김제원은 황해남도 재령군의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고용노동과 소작농으로 고역의 나날을 보내다가 해방 후 비로소 토지개혁의 혜택으로 제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토지개혁 이후 북한 농민들은 봉건적 착취 하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장구한 세월에 그들이 진실로 원하던 바와 같이 밭갈이하는 사람만이 토지를 분여 받게 되었고, 따라서 농민들은 제 밭에서 제 손으로 농사짓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을 얻은 농민들은 제 손으로 자기 생활을 건설하여 제 손으로 자기생활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가 그들을 괴롭히던 각종 제도가 폐지되고 다만 유일한 25%의 현물세제(現物稅制)가 실시됨으로써 그들의 생활은 향상되고, 동시에 역사적 토지개혁의 성과는 한층 확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북한 농민들은 불타는 애국심을 각 방면으로 표시하여 자기의 노력, 자기의 재산까지라도 서슴지 않고 제공하였고,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세인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농민들의 건국열에 대한 구체적 표현으로써 김제원애국미헌납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이며, 이는 농민들의 정치적 각성이 나날이 제고되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경과

김제원애국미운동에는 수십만 농민이 참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식량을 국가에 바쳐, 그들은 말로만 건국사업을 돕는 것이 아니라 실제행동으로 국가경제 토대를 견고히 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원조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또 한 가지 조건으로 김일성이 제창한 건국사상동원운동에 호응하여 농민들이 과거 일제·봉건적 사상을 버리고 새로운 생기발랄한 기풍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생긴 바는 사실이다.

이렇게 농민들은 재발함으로서 인민정권은 노동자·농민의 동맹관계를 더욱 더 굳게 함에 있어서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결과

1947년 2월 1일자 『로동신문』에는 “김제원애국미운동을 농업증산운동으로 전환하자”라는 글이 실렸다. 내용은 애국적 농민들은 김제원애국미운동의 성과를 한층 공고화하기 위하여 이를 농업생산증강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농민들의 이러한 애국적 정신을 가일층 발휘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건국사상동원운동에 체결될 것이며, 농민들의 정치적·사상적 수준 또한 향상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의의와 평가

김제원농민을 비롯한 전국농민들이 국가에 바친 애국미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만경대혁명학원을 건립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김제원은 여러 차례 김일성을 만났고 농업문제와 관련한 교시를 받는 영광을 지녔다. 김제원은 1948년 8월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으로 일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식량증산투쟁과 전선원호사업에 앞장섰으며 용감히 싸우다가 최후를 마쳤다. 그가 살던 대흥리를 1961년 3월 16일부터 김제원리로, 해주농업대학을 1990년 10월 31일부터 김제원대학으로, 김제원리에 있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병원, 상점 등을 그의 이름을 달아 부르게 하였다. 김제원리에 1998년 그의 반신상이 세워졌다.

참고문헌

『조선지명편람(朝鮮地名便覽) (황해남도)』(사회과학출판사, 2002)
『북한관계사료집(北韓關係史料集) 35』(국사편찬위원회, 2001)
『조선대백과사전(朝鮮大百科事典) 4』(백과사전출판사, 1996)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류길재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