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의 주장에 따르면, 군정학습은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관)들과 대원들을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조선혁명의 노선과 방침, 독창적인 유격전술과 전법으로 무장시켜 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 기술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군정학습은 정치학습을 위주로 하면서 거기에 군사훈련을 배합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정치학습에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조국광복회 10대강령”을 비롯한 김일성의 로작학습을 기본으로 하여 계급교양, 애국주의와 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로 무장시키기 위한 교양사업, 국제정세와 군중공작방법, 그리고 일반 지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과목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취급되었다.
학습은 대상의 준비정도에 맞게 자습반과 식자반으로 나누고 강의와 자습, 토론을 배합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자습반에는 부대의 지휘간부들과 정치이론 수준이 높은 대원들이 망라되었으며, 그에 대한 지도는 김일성이 직접 맡았다. 중대단위로 조직된 식자반에는 신입대원들과 정치이론 수준이 낮은 대원들이 망라되었으며, 이에 대한 지도를 강사로 임명된 중대간부들과 비서처 성원들이 맡아하였다.
군사학습은 중대단위로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학습제목과 그 내용에 따라 소대나 련대단위로 진행하였다. 군사훈련에서는 김일성이 집필한 “유격대동작”과 “유격대상식”에 상세히 반영된 유격 전술과 전법들을 깊이 연구하고 정통하기 위한데 중심을 두고 전술훈련과 사격훈련을 많이 하였다. 특히 신입대원들이 계속 보충되는 조건에서 규정학습과 제식(대렬)훈련, 창격훈련을 강화하는데 힘을 넣었다.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시기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혁명적 구호를 제시하였고 혁명 앞에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될 때마다 혁명군의 정치군사적 자질을 높여 임의의 정황에서도 유격전을 능숙하게 전개해나갈 수 있도록 지휘원들과 대원들을 준비시키는 군정학습을 조직하곤 하였다. 1937년 초에 역사적인 조국진군작전을 앞두고 진행한 동강밀영에서의 군정학습, 1937년 말∼1938년 초에 마당거우밀영에서 진행한 군정학습, 1940년 1월 상순부터 2월 하순까지 백석탄밀영에서 진행한 군정학습, 조국광복의 혁명적대사변을 앞두고 진행한 군정훈련 등은 그러한 대표적인 예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