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사제로 11년 6개월 동안 사목 활동을 한 신부이다.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부터 1842년까지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42년 마카오를 떠나 북만주 소팔가자에 머물렀고, 1844년 페레올 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1846년부터 몇 차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조선에 입국했다. 수년간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을 도맡아 하며 순교자 행적 조사, 교리서와 기도서 번역에 힘쓰다 1861년 6월에 사망했다.
최양업
(崔良業)
최양업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사제로 11년 6개월 동안 사목 활동을 한 신부이다.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부터 1842년까지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42년 마카오를 떠나 북만주 소팔가자에 머물렀고, 1844년 페레올 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1846년부터 몇 차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조선에 입국했다. 수년간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을 도맡아 하며 순교자 행적 조사, 교리서와 기도서 번역에 힘쓰다 1861년 6월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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