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판형. 121면. 월간문학사에서 1973년 3월 5일 발행하였다.
이 시집은 속표지 다음에 시인의 흑백 사진과 약력, 서정주의 ‘서(序)’, 목차에 이어 총53편의 작품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겉표지의 시집 제목 글씨는 오법안(吳法眼)이 썼고, 속표지의 시집 제목은 이제하(李祭夏)가 썼다.
이 시집에는 맨 처음에 수록한 「노래」에서 1969년『월간문학』 창간호에 당선된 작품 「불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53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시집의 지배적 이미지는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이미지가 특히 잘 드러나는 작품은 「만가(輓歌)」, 「눈」 등이다. 「만가」의 경우, “지금 서울에는 비가 내린다/저 어두운 노래 속을 꿰어 다니는/한 방울의 짧은 죽음”과 같이 표현되고, 「눈」의 경우, “누가 날 흔들어/눈을 떠 보니//죽은 바다 같은 어두움 속에/고요가 하얗게 곁에 와 섰더라”와 같이 표현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단순히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여/너와 나눠 가질 수 없는/단 한 방울의 죽음을/빛으로 뿌리기 위해//나는 지금/천둥이 되려고 한다”(「만가」)에서 보는 것처럼 적극적인 어조로 화자의 태도를 전환하거나, “이 밤중/깊이 숨겨 우리네 눈을/대낮같이/뜨게 하더라”(「눈」)에서 보는 것처럼 죽음과 어둠의 이미지를 긍정적이고 활달한 세계로 이끌고 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작품도 눈에 띄는데, 「유령」과 「새에게 쫓기는 소녀」 등의 시편이 그러하다. 「유령」의 경우 “나는 밤이면 몸뚱이만 남지//시아비는 내 손을 잘라가고/시어미는 내 눈을 도려가고/시누이는 내 말(言)을 빼앗아가고/남편은 내 날개를/그리고 또 누군가 내 머리를 가지고/달아나서/하나씩 더 붙이고 유령이 되지”와 같이 표현하고 있으며, 「새에게 쫓기는 소녀」의 경우 “풀들은 푸들푸들 떨고만 있었다. 치마에서 꽃들이 일제히 튀어 나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뛰어 다녔다. 총도 소녀를 구해 주진 못했다”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 이 시집에는 새, 꽃, 바람, 비, 나무 등 원형적 자연물의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천상과 지상을 거침없이 오고가는 폭넓은 공간의식도 돋보인다.
이 시집은 낭만주의적 정신을 기본 색채로 하고 있으며, 청순한 감각과 명징한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이 시집은 시대의 아픔과 내면의식을 형상화하려는 시의식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여러 작품을 통하여 자유에 이르고자 하는 시적 성찰과 자아와 세계에 대한 감각적 의식구조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