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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9년∼501년이다. 제22대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진씨 세력에 의해 옹립되었다. 신진세력들을 중앙귀족으로 등용하여, 한성에서 남하해온 귀족을 견제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웅진 천도 초기의 정치적 불안을 종식시켰다. 중국 남제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신라와 혼인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대항했다. 신진세력의 지나친 성장을 경계하여 견제책을 쓰다가 신진 백가세력에게 암살당했다. 동성왕의 왕실 지배기반 확보는 이후 무령왕·성왕대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동성왕 (東城王)
동성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9년∼501년이다. 제22대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진씨 세력에 의해 옹립되었다. 신진세력들을 중앙귀족으로 등용하여, 한성에서 남하해온 귀족을 견제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웅진 천도 초기의 정치적 불안을 종식시켰다. 중국 남제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신라와 혼인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대항했다. 신진세력의 지나친 성장을 경계하여 견제책을 쓰다가 신진 백가세력에게 암살당했다. 동성왕의 왕실 지배기반 확보는 이후 무령왕·성왕대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문주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5∼477년이다. 왕자로 있을 때 아버지 개로왕을 보좌하여 최고관직인 상좌평을 역임했다. 475년(개로왕 21) 고구려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자, 동맹국 신라에 구원을 청하러 파견되었다. 구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도성이 함락되어 파괴되고 개로왕은 살해된 뒤였다. 국난의 상황에서 즉위한 문주왕은 웅진천도를 단행하여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으나 난립한 귀족 파벌간의 쟁투는 더 심각해졌고, 결국 재위 3년 만에 정권을 장악한 병관좌평 해구가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문주왕 (文周王)
문주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5∼477년이다. 왕자로 있을 때 아버지 개로왕을 보좌하여 최고관직인 상좌평을 역임했다. 475년(개로왕 21) 고구려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자, 동맹국 신라에 구원을 청하러 파견되었다. 구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도성이 함락되어 파괴되고 개로왕은 살해된 뒤였다. 국난의 상황에서 즉위한 문주왕은 웅진천도를 단행하여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으나 난립한 귀족 파벌간의 쟁투는 더 심각해졌고, 결국 재위 3년 만에 정권을 장악한 병관좌평 해구가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 해구와 함께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관리. 반란자.
연신 (燕信)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 해구와 함께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관리. 반란자.
전지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5~420년이다. 태자시절 왜에 볼모로 보내졌다가 부왕 아신왕이 죽자 귀국하던 중 아신왕의 막내아들 설례가 왕위를 찬탈했다. 귀족 세력인 해씨 세력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해 설례가 진압되고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정치구도가 변하여 해씨 세력이 크게 부상하고 진씨 세력이 퇴조했다.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좌평을 설치했으며 왕족을 상좌평에 임명함으로써 권력기반을 안정시켰다. 대외관계에서는 왜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의 동진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전지왕 (腆支王)
전지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5~420년이다. 태자시절 왜에 볼모로 보내졌다가 부왕 아신왕이 죽자 귀국하던 중 아신왕의 막내아들 설례가 왕위를 찬탈했다. 귀족 세력인 해씨 세력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해 설례가 진압되고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정치구도가 변하여 해씨 세력이 크게 부상하고 진씨 세력이 퇴조했다.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좌평을 설치했으며 왕족을 상좌평에 임명함으로써 권력기반을 안정시켰다. 대외관계에서는 왜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의 동진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웅진천도는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충청남도 공주)으로 도읍지를 옮긴 사건이다. 475년 9월 장수왕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은 한성을 불시에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살해한 후 주민 8천 명을 포로로 잡고 곧바로 철수했다. 왕자 문주가 동맹국 신라의 구원병 1만 명을 이끌고 도착했으나 한성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문주는 폐허에서 왕위에 오른 후 그해 10월 웅진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천도를 단행했다. 백제 역사상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추동한 사건이다. 천도 후 100여 년이 지나 무령왕이 집권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웅진천도 (熊津遷都)
웅진천도는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충청남도 공주)으로 도읍지를 옮긴 사건이다. 475년 9월 장수왕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은 한성을 불시에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살해한 후 주민 8천 명을 포로로 잡고 곧바로 철수했다. 왕자 문주가 동맹국 신라의 구원병 1만 명을 이끌고 도착했으나 한성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문주는 폐허에서 왕위에 오른 후 그해 10월 웅진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천도를 단행했다. 백제 역사상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추동한 사건이다. 천도 후 100여 년이 지나 무령왕이 집권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