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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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조선전기 시인 허난설헌의 무덤.
허난설헌 묘 (許蘭雪軒 墓)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조선전기 시인 허난설헌의 무덤.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안현동 일원에 있는 동해안 최대의 해수욕장.
경포해수욕장 (鏡浦海水浴場)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안현동 일원에 있는 동해안 최대의 해수욕장.
김성립은 조선 전기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 등을 지냈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남편이자 문장가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장인 허엽과 아내 허난설헌, 처남 허균 등이 포함되었던 '허씨오문장'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김성립 (金誠立)
김성립은 조선 전기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 등을 지냈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남편이자 문장가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장인 허엽과 아내 허난설헌, 처남 허균 등이 포함되었던 '허씨오문장'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유선사(遊仙詞)」는 조선 중기에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선계에서 노니는 일을 엮어 지은 칠언절구 87수의 연작 한시이다. 허난설헌의 대표작으로, 현실의 고통을 선계에 대한 상상을 통해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신선이 되어 선인들과의 교유하는 장면을 형상화하였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선계에서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위로하였다. 화려한 색상 시어와 선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상승구조를 사용하여 작가의 의식세계를 표현하였다.
유선사 (遊仙詞)
「유선사(遊仙詞)」는 조선 중기에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선계에서 노니는 일을 엮어 지은 칠언절구 87수의 연작 한시이다. 허난설헌의 대표작으로, 현실의 고통을 선계에 대한 상상을 통해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신선이 되어 선인들과의 교유하는 장면을 형상화하였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선계에서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위로하였다. 화려한 색상 시어와 선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상승구조를 사용하여 작가의 의식세계를 표현하였다.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 (安東金氏 墓 出土 衣服)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69년(선조 2)에 태어나 1618년(광해군 10)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문재에 뛰어났고 학문은 유성룡에게, 시는 이달에게 배웠다. 명 사신 접대에 종사관으로 기용되어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명나라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광해군 즉위 후 대북파에 가담하여 폐모론을 적극 주장했다. 유학 외에 불교와 도교 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비판적 개혁사상가로서 여러 이론을 개진했고,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 「한정록」 등의 작품을 남겼다.
허균 (許筠)
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69년(선조 2)에 태어나 1618년(광해군 10)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문재에 뛰어났고 학문은 유성룡에게, 시는 이달에게 배웠다. 명 사신 접대에 종사관으로 기용되어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명나라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광해군 즉위 후 대북파에 가담하여 폐모론을 적극 주장했다. 유학 외에 불교와 도교 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비판적 개혁사상가로서 여러 이론을 개진했고,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 「한정록」 등의 작품을 남겼다.
허봉(許篈, 1551~1588)은 조선 전기에 『하곡집(荷谷集)』을 저술한 문인이다. 그의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자는 미숙(美叔), 호는 하곡(荷谷)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허엽(許曄)이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오빠이자 허균(許筠)의 형이며, 유희춘(柳希春)의 문인(門人)이다. 1574년 성절사 서장관으로 자청하여 명나라에 가서 중국의 양명학자들과 담론을 나누며 양명학을 변척하였다. 『해동야언(海東野言)』, 『이산잡술(伊山雜述)』 등의 편서가 전한다.
허봉 (許篈)
허봉(許篈, 1551~1588)은 조선 전기에 『하곡집(荷谷集)』을 저술한 문인이다. 그의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자는 미숙(美叔), 호는 하곡(荷谷)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허엽(許曄)이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오빠이자 허균(許筠)의 형이며, 유희춘(柳希春)의 문인(門人)이다. 1574년 성절사 서장관으로 자청하여 명나라에 가서 중국의 양명학자들과 담론을 나누며 양명학을 변척하였다. 『해동야언(海東野言)』, 『이산잡술(伊山雜述)』 등의 편서가 전한다.
허엽은 조선 중기 명종~선조 대 이조참의,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등을 지낸 문신이다. 문장가로 유명하였고, 슬하 4남매였던 허성, 허봉, 허균, 허초희와 함께 '허씨오문장'으로 불렸다. 허씨오문장 중 난설헌 허초희와 허균이 특별히 유명하였다. 선조 대 동서 분당이 발생하였을 때 동인의 종주가 되었다.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되었다가 선조 즉위 후 진하책봉태자사로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이후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1580년 병사하였다.
허엽 (許曄)
허엽은 조선 중기 명종~선조 대 이조참의,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등을 지낸 문신이다. 문장가로 유명하였고, 슬하 4남매였던 허성, 허봉, 허균, 허초희와 함께 '허씨오문장'으로 불렸다. 허씨오문장 중 난설헌 허초희와 허균이 특별히 유명하였다. 선조 대 동서 분당이 발생하였을 때 동인의 종주가 되었다.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되었다가 선조 즉위 후 진하책봉태자사로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이후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1580년 병사하였다.
조선 중기, 허균(許筠)이 죽은 누이를 추도해 지은 사(辭).
훼벽사 (毁璧辭)
조선 중기, 허균(許筠)이 죽은 누이를 추도해 지은 사(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