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중기 명종~선조 대 이조참의,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등을 지낸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540년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였고, 1546년(명종 1) 식년시 문과에서 갑과 3등 탐화랑(探花郞)으로 급제하였다. 명종 대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을 시작으로 이조좌랑(吏曹佐郞), 홍문관(弘文館) 부수찬(副修撰), 이조정랑(吏曹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1560년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다.
1568년(선조 1) 진하책봉태자사(進賀冊封太子使)로 임명되어 박영준(朴永俊)과 함께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1571년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1575년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병환 때문에 사직하였다. 이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1580년 병으로 상주(尙州)의 객관(客館)에서 6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노수신(盧守愼) · 이준경(李浚慶) · 심희수(沈喜壽) 등과 교류하였는데, 특히 노수신과 가깝게 지냈다. 본인을 비롯해 4남매의 문장이 모두 뛰어나 당시 사람들에게 ‘허씨오문장(許氏五文章: 허엽 · 허성 · 허봉 · 허난설헌 · 허균)'이라 불렸다고 한다. 사위 김성립(金誠立)과 우성전(禹性傳) 역시 문장으로 유명한 인물들이어서, 당시 사람들은 허씨 가문의 세력이 가장 크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동서 분당 때 동인(東人)의 종주(宗主)가 되어 의론을 엄격하게 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주석
-
주1
: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에서 갑과에 셋째로 급제한 사람. 정칠품의 품계를 주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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