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부(淸夫). 허비(許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창(許菖)이고, 아버지는 허담(許聃)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형조판서 윤계겸(尹繼謙)의 딸이다.
진사를 거쳐 1510년(중종 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간원정언을 거쳐 공조좌랑이 되었다. 1517년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어 언로(言路)를 넓힐 것을 극간하였으며, 1522년에는 세자시강원의 문학·필선 등을 지냈다.
이듬해 일 년만에 두 계단을 뛰어 세자시강원의 보덕으로 임명되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다시 필선이 되었다. 1544년 전라도암행어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나기에 앞서 어사의 사목(事目)에 수령의 죄를 직단하고 유향소를 형문(刑問: 형을 가하면서 신문함.)할 수 있다는 내용 첨가를 왕에게 요청하여 허락받고 임지로 떠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뒤 호군을 거쳐 다시 보덕에 임명되었고, 동부승지·좌부승지·공조참의를 지냈다. 1531년(중종 26)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1535년 병조참의에 임명되어 내직으로 돌아 왔다. 사람됨이 휴휴(休休: 차분하고 여유가 있음.)하여 장자다운 기풍이 있었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