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이조참판, 전라도안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언(功彦)
  • 산전(山前), 악록(岳麓)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양천(陽川)
  • 사망 연도1612년(광해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참의|대사간|부제학|이조참판|전라도안찰사|이조판서
  • 출생 연도1548년(명종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동길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악록문집 미디어 정보

악록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이조참판, 전라도안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허담(許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봉사 허한(許澣)이고, 아버지는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한숙창(韓叔昌)의 딸이다.

허봉(許篈)·허균(許筠)의 형이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오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이름난 문장가였다.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이다. 1568년(선조 1) 생원이 되고,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0년 전적(典籍)으로서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이어 정언·헌납·이조좌랑·응교·사인·집의를 거쳐, 1594년 이조참의로 승진되었으며, 이듬해 대사성·대사간·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참판을 지내고 전라도안찰사로 나갔다가 예조와 병조의 판서에 제수되었으며, 그 뒤 이조판서에까지 이르렀다.

1607년 선조의 유교(遺敎)를 받게 되어 세인들이 고명칠신(顧命七臣)이라 칭하게 되었다. 선조대에 학문과 덕망으로 사림의 촉망을 받았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악록집(岳麓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동명집(東冥集)』

  • - 『악록집(岳麓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朝鮮金石攷』(葛城末治, 國書刊行會, 193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