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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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무(監務)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속군현(屬郡縣)에 파견된 지방 관직이다. 유민의 안집과 권농, 조세 수취, 향리를 감독하는 등 부임한 군현의 지방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감무는 1106년(예종 1)부터 시작하여 인종 대, 명종 대에 걸쳐 대규모로 파견되었다. 1359년(공민왕 8)에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 고쳤다가 1388년(창왕 즉위년)에 다시 현령 · 감무로 바꾸었다. 공양왕 때에는 조선 건국 세력이 군현제를 정비하는 작업의 하나로 감무를 새로 설치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으로 개칭하였다.
감무 (監務)
감무(監務)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속군현(屬郡縣)에 파견된 지방 관직이다. 유민의 안집과 권농, 조세 수취, 향리를 감독하는 등 부임한 군현의 지방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감무는 1106년(예종 1)부터 시작하여 인종 대, 명종 대에 걸쳐 대규모로 파견되었다. 1359년(공민왕 8)에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 고쳤다가 1388년(창왕 즉위년)에 다시 현령 · 감무로 바꾸었다. 공양왕 때에는 조선 건국 세력이 군현제를 정비하는 작업의 하나로 감무를 새로 설치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으로 개칭하였다.
맹지대는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연간 장령·교리·승지·김천찰방·강릉현감·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세종 때의 명신 맹사성의 후손이다. 1752년(영조 28)에 송시열과 송준길을 문묘에 종향하자는 상서문을 올렸다.
맹지대 (孟至大)
맹지대는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연간 장령·교리·승지·김천찰방·강릉현감·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세종 때의 명신 맹사성의 후손이다. 1752년(영조 28)에 송시열과 송준길을 문묘에 종향하자는 상서문을 올렸다.
김준민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거제현령과 합천가장을 지낸 무신으로, 왜군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지켜냈다. 경상우도 의병장 손인갑이 전사하자, 그를 대신하여 합천가장으로 왜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의 공격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전사하였다.
김준민 (金俊民)
김준민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거제현령과 합천가장을 지낸 무신으로, 왜군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지켜냈다. 경상우도 의병장 손인갑이 전사하자, 그를 대신하여 합천가장으로 왜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의 공격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전사하였다.
박도상은 조선 후기 의금부도사, 예조좌랑, 연천현감, 영양현감,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70년(영조 46년) 영조가 주관한 구일제(九日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였고, 다음해 식년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7년(정조 21) 장령에 제수되었을 때 영양현감 시절 경험하였던 영남의 폐단을 10개의 조목으로 정리하여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영조와 정조가 문신을 대상으로 시행한 제술(製述)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였다.
박도상 (朴道翔)
박도상은 조선 후기 의금부도사, 예조좌랑, 연천현감, 영양현감,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70년(영조 46년) 영조가 주관한 구일제(九日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였고, 다음해 식년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7년(정조 21) 장령에 제수되었을 때 영양현감 시절 경험하였던 영남의 폐단을 10개의 조목으로 정리하여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영조와 정조가 문신을 대상으로 시행한 제술(製述)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였다.
조선 고종 때 조희백(趙熙百)이 지은 기행가사.
도해가 (渡海歌)
조선 고종 때 조희백(趙熙百)이 지은 기행가사.
조선 후기에, 옥천군수, 사도시첨정, 면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안종해 (安宗海)
조선 후기에, 옥천군수, 사도시첨정, 면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수령은 고려시대 이후 주(州)·부(府)·군(郡)·현(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린 지방관이다. 고려시대에는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가 되면서 전국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령의 품계는 종2품에서 종6품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관찰사의 관할하에 있었다. 조선은 원활한 수령제 운영을 위하여 수령의 선발, 임기, 고과의 기준을 정비하였다. 수령은 군현에서 수령칠사를 담당하였고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는 향리와 면리임이 있고, 자문 및 보좌 기관으로 유향소가 존재하였다.
수령 (守令)
수령은 고려시대 이후 주(州)·부(府)·군(郡)·현(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린 지방관이다. 고려시대에는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가 되면서 전국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령의 품계는 종2품에서 종6품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관찰사의 관할하에 있었다. 조선은 원활한 수령제 운영을 위하여 수령의 선발, 임기, 고과의 기준을 정비하였다. 수령은 군현에서 수령칠사를 담당하였고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는 향리와 면리임이 있고, 자문 및 보좌 기관으로 유향소가 존재하였다.
성우는 해방 이후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1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성은 김씨, 호는 자운(慈雲)이다. 1927년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혜운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타계한 1992년까지 해인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외의 불교 현황을 시찰한 뒤 인간 존엄의 도덕성 회복을 역설하고 자비에 바탕을 둔 보시정신과 정토사상을 중시하였다. 1992년 해인사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입적하였다. 행적비와 사리탑이 해인사에 있다. 한국불교의 기강을 확립한 공이 크다.
성우 (盛祐)
성우는 해방 이후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1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성은 김씨, 호는 자운(慈雲)이다. 1927년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혜운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타계한 1992년까지 해인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외의 불교 현황을 시찰한 뒤 인간 존엄의 도덕성 회복을 역설하고 자비에 바탕을 둔 보시정신과 정토사상을 중시하였다. 1992년 해인사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입적하였다. 행적비와 사리탑이 해인사에 있다. 한국불교의 기강을 확립한 공이 크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관청.
일관헌 (日觀軒)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관청.
조선 전기에, 횡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최운우 (崔雲遇)
조선 전기에, 횡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