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청사이다. 원래의 일관헌은 객사(客舍)의 동헌(東軒)으로, 대개 지방에 나와 있어도 임금님을 쳐다보는 것과 같이 바른 정사를 행한다는 뜻으로 동헌의 이름을 일관헌이라 편액했던 것이나, 1899년 군수 강인호(康仁鎬)가 중수한 뒤에 불타버렸다. 따라서 지금의 일관헌은 원래 이아(貳衙)였으며, 그 편액도 영양관(瀛陽館)이었던 것을 1903년에 목사 홍종우(洪鍾宇)가 일관헌으로 고쳐 편액한 것이다.
1416년(태종 16) 안무사 오식(吳湜)이 조정에 건의하여, 한라산 남쪽 2백여 리 지역을 동서로 구분하여 정의·대정 두 현을 설치할 때, 정의현은 성산읍 고성리에 두었다.
그러나 고성리는 왜구가 자주 드나드는 우도(牛島)를 앞에 두고 있어 방어상 어려움이 있고, 또 동부 지역에 위치해 있어 서부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많아, 1423년(세종 5) 안무사 정간(鄭幹)이 현청(縣廳)을 현 성읍리로 옮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아 건물도 그 후 여러 차례 증·개축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나 확실한 연대는 고증할 길이 없다. 지금의 건물은 1898년 군수 김희주(金熙胄)가 중수한 후, 1975년에 다시 옛 건물을 헐어 내고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2층 기단석 위에 축조되었다. 건물의 좌향은 동남향으로 사방으로 창호문을 시설하였고, 퇴는 개방하고 마루를 깔았다. 측면은 현무암으로 마감하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