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명월진성은 둘레가 3천 20척, 높이가 8척이었으며, 동쪽과 남쪽 및 서쪽에 각각 성문이 있었다. 성안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었고, 건물로는 객사·별창·군기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명월포는 1270년(고려 원종 11)에 삼별초의 별장(別將) 이문경(李文京)이 고려에서 파견된 관군을 진압하고 탐라를 점령할 때 상륙한 곳이며, 김방경(金方慶)이 삼별초를 정벌할 때에도 그 일진이 이곳으로 상륙하였다.
더욱이 1374년(공민왕 23) 목장을 관리하기 위해 몽고에서 파견된 몽고인 목자[牧胡]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최영(崔瑩) 장군이 상륙한 곳도 명월포였다.
이곳에는 원래 성이 없었으나 1510년(중종 5)에 장림(張琳) 목사가 이곳은 비양도(飛揚島)로 왜선이 가까이 댈 수 있는 곳이라 하여 그 대비책으로 목성을 쌓았는데, 1592년(선조 25)에 목사 이경록(李慶祿)이 이를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1764년(영조 40)에는 어사 이수봉(李壽鳳)이 조정에 건의하여 진장(鎭長)을 조방장(助防將)에서 만호(萬戶)로 승격시키고 제주인으로 선발하여 임명하도록 하였다.
정조 때 제주를 다녀간 어사 박천형(朴天衡)의 서계(書啓)에 “명월진은 서북쪽이 바다에 임하였고 진 앞에는 배를 정박할 만한 곳이 없으나 진의 서쪽 3리쯤에 독포가 있어서 어선이나 상선이 와서 정박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또 제주와 대정(大靜) 사이에 위치하여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9진 중 으뜸이다. 성지가 광활하고 백성들이 부유하며 샘물과 창고도 있어서 충분히 자급할 수 있으므로 서남쪽 거진(巨鎭)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여 제주의 9진 중 명월진만이 구색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