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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양명산 (梁明山)
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이순용은 일제강점기 미국 전략첩보국(OSS) 침투작전에 미 육군 하사로 선발된 독립운동가, 관료이다. 1897년 서울 출생으로 북경,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후 이승만의 측근이 되었으며,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1942년 이승만의 추천으로 미 육군 하사가 된 후 미국 전략첩보국 요원으로 활동했다. 1951년 제6대 내무부 장관에 지명되었으나 국적문제가 논란이 되었고, 미국시민권을 포기했으나 내무부 장관 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후 체신부 장관, 대한해운공사 사장, 외자청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순용 (李淳鎔)
이순용은 일제강점기 미국 전략첩보국(OSS) 침투작전에 미 육군 하사로 선발된 독립운동가, 관료이다. 1897년 서울 출생으로 북경,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후 이승만의 측근이 되었으며,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1942년 이승만의 추천으로 미 육군 하사가 된 후 미국 전략첩보국 요원으로 활동했다. 1951년 제6대 내무부 장관에 지명되었으나 국적문제가 논란이 되었고, 미국시민권을 포기했으나 내무부 장관 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후 체신부 장관, 대한해운공사 사장, 외자청장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