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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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길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상주판관(商州判官)으로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순절한 문신이다.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음보(蔭輔)로 기용되어 상주판관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군사와 합세하여 상주 북천(北川)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군과 싸웠는데, 호장(戶長) 박걸(朴傑)을 비롯하여 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호응하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무기와 군사수의 열세로 패하여 순절하였다. 뒤에 상주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권길 (權吉)
권길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상주판관(商州判官)으로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순절한 문신이다.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음보(蔭輔)로 기용되어 상주판관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군사와 합세하여 상주 북천(北川)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군과 싸웠는데, 호장(戶長) 박걸(朴傑)을 비롯하여 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호응하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무기와 군사수의 열세로 패하여 순절하였다. 뒤에 상주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김성원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사인(士人)이자 학자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행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조헌에게 물어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금산군의 서쪽 경계에서 적과 하루 종일 싸우다가 아군의 후원 세력이 없어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뒷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에 묻혔다.
김성원 (金聲遠)
김성원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사인(士人)이자 학자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행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조헌에게 물어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금산군의 서쪽 경계에서 적과 하루 종일 싸우다가 아군의 후원 세력이 없어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뒷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에 묻혔다.
김여생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의 의병장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義)를 부르짖고, 의병을 모집하였고, 개인 재산을 털어 군량미를 확보하였다. 휘하 의병을 이끌고 전라도에서 일본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에 오르고, 뒷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김여생 (金麗生)
김여생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의 의병장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義)를 부르짖고, 의병을 모집하였고, 개인 재산을 털어 군량미를 확보하였다. 휘하 의병을 이끌고 전라도에서 일본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에 오르고, 뒷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김연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장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김대해, 유생 최인제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성을 수복하였다. 이어서 경주를 수복하기 위해 경상좌병사 박진 휘하의 부대와 연합하여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뒷날 한성부 판관에 추증되었다.
김연 (金演)
김연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장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김대해, 유생 최인제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성을 수복하였다. 이어서 경주를 수복하기 위해 경상좌병사 박진 휘하의 부대와 연합하여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뒷날 한성부 판관에 추증되었다.
김응상은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로 명나라에 간 주청사 황림의 종사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가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이 추천하여 뽑혔다. 뒷날 병마절도사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좌부승지에 추증되었다.
김응상 (金應祥)
김응상은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로 명나라에 간 주청사 황림의 종사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가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이 추천하여 뽑혔다. 뒷날 병마절도사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좌부승지에 추증되었다.
김희철은 광해군의 후궁 공빈김씨의 아버지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다.
김희철 (金希哲)
김희철은 광해군의 후궁 공빈김씨의 아버지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다.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