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상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무신.
이칭
  • 서백(瑞伯)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언양(彦陽)
  • 사망 연도1583년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마절도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충청남도 직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강식 (한국해양대 교수)
  • 최종수정 2026년 02월 0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응상은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로 명나라에 간 주청사 황림의 종사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가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이 추천하여 뽑혔다. 뒷날 병마절도사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좌부승지에 추증되었다.

정의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및 인적사항

김응상(金應祥)은 충청도 직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서백(瑞伯)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덕윤(金德潤)이다.

주요 활동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를 띠고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로 간 황림(黃琳)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비변사 당상(堂上)들에게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郭屹)이 추천하여 뽑혔다.

뒷날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1583년에 유하(柳下)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봉곡계찰방유집(鳳谷桂察訪遺集)』

  •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 『오한선생문집(聱漢先生文集)』

  • - 『직산읍지(稷山邑誌)』

  • - 『직하삼강실록(稷下三綱實錄)』(국립중앙도서관)

  • 단행본

  • - 『천안군지』(천안군청, 1984)

주석

  • 주1

    : 조선 시대에 둔, 정삼품 상(上) 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 주2

    : 김응상 추천 : 『선조수정실록』 17권, 1583년(선조 16) 3월 1일. "비변사 당상들에게 인재를 추천하게 하였고, 부제학 유성룡이 해직하고 귀향하다"

  • 주3

    : 전사 : 『직하삼강실록(稷下三綱實錄)』(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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