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성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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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도와 기상 관측 기기를 이용하여 분석한 기상상태에 대한 예보. 점후법·점우법.
일기예보 (日氣豫報)
일기도와 기상 관측 기기를 이용하여 분석한 기상상태에 대한 예보. 점후법·점우법.
풍향계는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는 기구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기다란 세모꼴 깃발을 긴 대나무 끝에 달아 깃발이 날리는 방향을 보고 풍향을 알았다. 이것을 풍기죽, 상풍간, 더 간단히 풍기라고 불렀다. 궁궐에서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중요한 천문기상 현상으로 간주하여 일상적으로 관측하였다. 현재 창경궁과 경복궁에 남아 있는 풍기대는 각각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오늘날의 풍향계는 기상청과 기상대에 설치되어 있다. 풍향계는 지상의 장애물 높이 10배 이상 떨어진 평탄한 곳에서 지상 10m 높이에 설치하는 것이 표준이다.
풍향계 (風向計)
풍향계는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는 기구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기다란 세모꼴 깃발을 긴 대나무 끝에 달아 깃발이 날리는 방향을 보고 풍향을 알았다. 이것을 풍기죽, 상풍간, 더 간단히 풍기라고 불렀다. 궁궐에서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중요한 천문기상 현상으로 간주하여 일상적으로 관측하였다. 현재 창경궁과 경복궁에 남아 있는 풍기대는 각각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오늘날의 풍향계는 기상청과 기상대에 설치되어 있다. 풍향계는 지상의 장애물 높이 10배 이상 떨어진 평탄한 곳에서 지상 10m 높이에 설치하는 것이 표준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에 있는 깃발대.
창경궁 풍기대 (昌慶宮 風旗臺)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에 있는 깃발대.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측우기 (測雨器)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측우대는 측우기를 안정(安定)하게 올려놓고 우량 측정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대석이다. 측우대는 화강석, 대리석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와 모양은 일정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설치된 9기의 측우대 중,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것은 5기이다. 세종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상감 측우대와 영조대에 제작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현재 국립중앙기상대에 있다. 여주의 영릉진열관에 대리석 측우대가, 국립중앙과학관에 통영 측우대가, 창덕궁 연경당에 연경당 측우대가 있다. 측우대는 조선시대의 과학적 기상 관측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측우대 (測雨臺)
측우대는 측우기를 안정(安定)하게 올려놓고 우량 측정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대석이다. 측우대는 화강석, 대리석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와 모양은 일정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설치된 9기의 측우대 중,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것은 5기이다. 세종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상감 측우대와 영조대에 제작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현재 국립중앙기상대에 있다. 여주의 영릉진열관에 대리석 측우대가, 국립중앙과학관에 통영 측우대가, 창덕궁 연경당에 연경당 측우대가 있다. 측우대는 조선시대의 과학적 기상 관측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