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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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병인양요 (丙寅洋擾)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1868년(고종 5)의 남연군묘 도굴미수사건.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 (Oppert의 南延君墓 盜掘事件)
1868년(고종 5)의 남연군묘 도굴미수사건.
1871년(고종 8) 미국 아시아함대가 강화도에 쳐들어온 사건.
신미양요 (辛未洋擾)
1871년(고종 8) 미국 아시아함대가 강화도에 쳐들어온 사건.
『서사록』은 대한제국기 관료 이종응이 영국 에드워드 7세 대관예식에 다녀온 후 1902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배 타고 서양에 갔다 온 기록’이라는 뜻이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 위협 속에서 애국정신을 고취하고자 영국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 책은 4월 6일에 한국을 출발하여, 6월 26일 영국 대관식에 참석한 후 8월 20일에 인천에 도착하기까지 총 136일간의 항행 견문 일기이다. 매일 일기 형식으로 썼는데 지명·인명은 한글로 기록했고, 양력 일자를 쓰고 음력을 부기했다. 또한 서양 과학기술 발달에 대한 ‘문화적 충격’을 기술하고 있다.
서사록 (西槎錄)
『서사록』은 대한제국기 관료 이종응이 영국 에드워드 7세 대관예식에 다녀온 후 1902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배 타고 서양에 갔다 온 기록’이라는 뜻이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 위협 속에서 애국정신을 고취하고자 영국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 책은 4월 6일에 한국을 출발하여, 6월 26일 영국 대관식에 참석한 후 8월 20일에 인천에 도착하기까지 총 136일간의 항행 견문 일기이다. 매일 일기 형식으로 썼는데 지명·인명은 한글로 기록했고, 양력 일자를 쓰고 음력을 부기했다. 또한 서양 과학기술 발달에 대한 ‘문화적 충격’을 기술하고 있다.
조선후기 신미양요 당시의 장수.
어재순 (魚在淳)
조선후기 신미양요 당시의 장수.
조선후기 공충도병마절도사, 회령부사, 병조판서지삼군부사 등을 역임한 장수.
어재연 (魚在淵)
조선후기 공충도병마절도사, 회령부사, 병조판서지삼군부사 등을 역임한 장수.
1875년 9월 20일 일본군함 운요호(雲揚號)의 강화해협 불법침입으로 발생한 한일 간의 포격사건.
운요호사건 (雲揚號事件)
1875년 9월 20일 일본군함 운요호(雲揚號)의 강화해협 불법침입으로 발생한 한일 간의 포격사건.
조선후기 신미양요 당시 대솔군관으로 광성보전투에 참전한 무신.
이현학 (李玄鶴)
조선후기 신미양요 당시 대솔군관으로 광성보전투에 참전한 무신.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항일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하였고,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한 독립운동가.
전명운 (田明雲)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항일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하였고,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한 독립운동가.
조미조약은 1882년(고종 19) 조선과 미국 간에 체결된 통상협정조약이다. 제너럴셔먼호사건 이후 미국은 조선 개항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다. 1871년에 포함외교로 개항을 강제로 추진하려고 조선원정을 단행했으나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에 부딪혀 좌절하였다. 조선은 『조선책략』을 바탕으로 개항정책을 수립하기도 했으나 척사파의 반대가 완강했다. 이 상황에서 청의 이홍장이 중재자로 나서 제물포 화도진에서 양국 대표 사이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됐다. 다른 조약에 비해 불평등이 배제되어 주권 독립국가간의 쌍무적 협약으로는 최초의 것이었다.
조미조약 (朝美條約)
조미조약은 1882년(고종 19) 조선과 미국 간에 체결된 통상협정조약이다. 제너럴셔먼호사건 이후 미국은 조선 개항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다. 1871년에 포함외교로 개항을 강제로 추진하려고 조선원정을 단행했으나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에 부딪혀 좌절하였다. 조선은 『조선책략』을 바탕으로 개항정책을 수립하기도 했으나 척사파의 반대가 완강했다. 이 상황에서 청의 이홍장이 중재자로 나서 제물포 화도진에서 양국 대표 사이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됐다. 다른 조약에 비해 불평등이 배제되어 주권 독립국가간의 쌍무적 협약으로는 최초의 것이었다.
제너럴셔먼호사건은 1866년(고종 3)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군민의 화공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자자하던 때 정체불명의 이양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교역을 강요했다. 미국 상선 셔먼호였다. 조선관리가 통상교역은 국법에 위배되며 대동강 항행은 영토침략·주권침해 행위임을 통보하며 강력 만류했으나 만경대까지 올라왔다. 갑자기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운항이 어려워지자 난폭하게 대포까지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평양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몰살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GeneralSherman號 事件)
제너럴셔먼호사건은 1866년(고종 3)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군민의 화공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자자하던 때 정체불명의 이양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교역을 강요했다. 미국 상선 셔먼호였다. 조선관리가 통상교역은 국법에 위배되며 대동강 항행은 영토침략·주권침해 행위임을 통보하며 강력 만류했으나 만경대까지 올라왔다. 갑자기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운항이 어려워지자 난폭하게 대포까지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평양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몰살했다.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항일단체인 대동보국회에 가입하였고,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한 독립운동가.
장인환 (張仁煥)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항일단체인 대동보국회에 가입하였고,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한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