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은 일제강점기 무교회주의를 제창한 교육자이자 종교인이다.
1901년(고종 38)에 출생하여 1945년 사망했다. 도쿄 유학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일본 기독교의 자주성을 주장하면서, 무교회운동을 전개하던 우치무라[內村鑑三]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 귀국하여 1927년 7월 『성서조선』을 창간하였다. 1942년 3월 『성서조선』이 불온 잡지로 지목되어 폐간당하고, 김교신을 비롯한 편집진 13명은 구속되어 1년간 옥고를 치뤘다. 최근에 그의 기독교에 대한 민족주의적 수용 자세, 종교인 및 교육가로서의 행적에 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김교신
(金敎臣)
김교신은 일제강점기 무교회주의를 제창한 교육자이자 종교인이다.
1901년(고종 38)에 출생하여 1945년 사망했다. 도쿄 유학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일본 기독교의 자주성을 주장하면서, 무교회운동을 전개하던 우치무라[內村鑑三]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 귀국하여 1927년 7월 『성서조선』을 창간하였다. 1942년 3월 『성서조선』이 불온 잡지로 지목되어 폐간당하고, 김교신을 비롯한 편집진 13명은 구속되어 1년간 옥고를 치뤘다. 최근에 그의 기독교에 대한 민족주의적 수용 자세, 종교인 및 교육가로서의 행적에 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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