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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 속하며 그 나라의 군함인 것을 나타내는 외부 표지를 부착한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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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군에 속하며 그 나라의 군함인 것을 나타내는 외부 표지를 부착한 선박.
내용

군함은 함적부(艦籍簿)에 등록되어 있고 해군사관에 의해 지휘되며, 외부 표지로서 소속 부대의 표지와 함종번호(艦種番號)를 표시하며, 정박중일 때는 함수에는 해군기, 함미에는 국기를 게양하고 항해중에는 마스트에 국기를 게양한다. 한편, 군함은 각종 현대 무기로 무장되어 있고, 일국의 해군력을 형성하는 중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군함도 군대와 같은 의미에서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기국(旗國)의 영해 내에서는 물론 공해상에서도 그 기국 이외의 어떠한 국가의 관할권으로부터도 완전히 면제된다.

군함은 상선과 달라서 외국의 영해에서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을 갖지 않으나, 국제항행의 요로에 해당하는 영해 부분에서는 무해통항권이 인정된다. 군함은 합법적으로 외국의 영해 또는 항만에 있는 동안에는 불가침권과 치외법권을 가지고 영수국(領水國)의 재판 관할로부터 면제된다.

군함의 최대 목적은 우수한 공격력을 갖추는 데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① 전투능력:적을 공격하거나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호하기 위한 무장, ② 기동성:군함의 속력 · 내해성(耐海性) · 안정성 · 기민성의 보유.

③ 전투지속능력:군함이 기지를 출발하여 얼마 동안 작전을 계속할 수 있는가 하는 작전 계속 능력, ④ 방호력:적의 포탄 · 미사일 · 어뢰 · 기뢰 등에 의한 공격 효과를 무효로 하거나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능력으로서 선체의 장갑 · 수밀격실 · 소화 및 배수시설 등이 포함된다.

군함의 크기는 배수(排水) 톤수로 표시된다. 배수 톤수란 군함 자체와 함상 및 함내에 적재된 모든 장비품의 중량이다. 구축함을 구성하는 중량 배분의 예를 보면 다음 [표 1]과 같다.

[표 1] 구축함 중량배분의 예 (단위 : %)

중량배분 선체 선구 항해장비 엔진 전기 무장 연료 기타
제2차대전형 28.7 3.0 2.0 30.0 2.0 12.7 16.4 5.2 100
전 후 형 28.7 5.8 2.3 23.1 3.9 14.0 16.2 6.0 100

물론 이 수치는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군함 전체 중량에서 선체 · 엔진 · 무장 · 연료의 무게가 약 85%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아 함정의 무게와 전력(戰力)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함을 건조할 때는 반드시 그 함정에 부여될 임무를 고려하여 건조해야 하며 임무에 따라 군함의 종류와 명칭이 분류된다. 현재 세계의 함정관계 문헌이나 연감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군함의 분류를 보면 다음 [표 2]와 같다.

[표 2] 군함의 분류

구분 전 투 함 기타전투함 보 조 함 전투주정
함종 항공모함 초계함 군수 초계정
수상전투함 상륙전함 지원함 상륙전주정
전함 기뢰전함 지원함 기뢰전주정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자료 : 함대함정 및 항공기.

우리 나라 문헌상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해전 기록으로는 위만조선과 한군이 수상전을 벌인 적이 있고, 233년(신라 조분왕 4) 7월에 신라 장군 석우로(昔于老)가 동해안에 횡행하는 왜구의 대선단을 사도해상(沙道海上)에서 화공으로 요격하여 섬멸한 사도대첩이 있다.

396년(광개토왕 6)과 405년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친히 고구려 수군을 지휘하여 백제를 공격하면서 58성과 7백촌을 빼앗고 서해상(지금의 황해도 근해)에 침입한 왜군의 대선단을 격파하여 고구려가 동북아시아에서 해상강국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488년(백제 동성왕 10)에 중국 위나라는 백제가 조공도 바치지 않고 불손하다 하여 수군으로 백제를 침공하였으나 백제 수군이 이를 크게 무찔렀다.

505년(신라 지증왕 6)에는 신라에서 선박 운항의 편리를 도모하는 제도를 만들었고, 678년(문무왕 18)에는 선부(船府)를 만들어 선박관리에 관한 사무를 보게 하였으며, 759년(경덕왕 18)에는 선부를 사주(司舟)로 개편하였다.

또한, 신라는 828년(흥덕왕 3)부터 846년(문성왕 8)까지 장보고가 청해진 대사로 있을 때 서남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일본과 중국 해상까지 해상교통로를 확보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수많은 해전을 치렀고,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상 중국대륙과의 교류와 일본과의 교통 등 해상활동이 활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는 우리 나라 군선 역사에 가장 많은 발명을 남겼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서 해전에 사용했던 누선(樓船)은 큰 누각이 있는 대형 군선이었고, 1010년(현종 1)에 동여진의 해상 침략을 격퇴하기 위하여 건조된 과선(戈船)은 누선보다 고속이며 선면에 철각을 꽂아 적선을 파괴하는 특수한 군선이었다.

그 뒤 1274년(충렬왕 즉위년)과 1281년(충렬왕 7)에 고려 · 원나라 연합군이 일본을 동정(東征)할 때 사용된 고려의 군선은 선체가 견고하고 항해능력과 전투능력이 뛰어나 고려의 조선술을 내외에 떨쳤다.

1377년(우왕 3)에 최무선(崔茂宣)이 화통도감(火㷁都監)이 되어 화약과 화포를 제조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1380년에는 화포를 군선에 장비하였다. 당시 해전은 단병 접전시에는 창검이, 격리 공격시에는 활이 유일한 무기로 사용되었는데, 군선에 화포를 장비한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이 화포를 장비한 고려 군선은 1380년과 1383년에 진포와 관음포 해전에서 왜선 5백 척과 120척을 각각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서양의 베네치아 해군이 군선에 함포를 처음 장비한 갈리아스선(Galleass船)보다 약 160년 앞선 일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태조 이성계는 등극 직후부터 수군의 군제(軍制)를 정비하여 조선 초기(1400∼1430)에 이미 군선제도를 확립하였다.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한 군선의 종류는 [표 3]과 같다.

[표 3] 조선 초기의 군선

종 류 척수 종 류 척수
大 船 8 兵 船 474
中 船 103 中猛船 18
猛 船 18 別 船 44
快 船 34 其他船 56
無軍船 57
中大船 17 829
자료 : 세종실록 지리지.

한편, 1460(세조 6)∼1485년(성종 16)에 걸쳐 완성을 본 ≪경국대전≫에 의하면 맹선의 보유 수가 대맹선 80척, 중맹선 192척, 소맹선 216척, 무군맹선 245척, 무군중맹선 3척, 무군대맹선 1척으로 모두 합하여 737척이며, 당시 군선을 속도가 느린 중대선보다 속도가 빠른 맹선에 주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조선 초기에 확립된 군선제도는 17세기에 함선에 등급을 매겨 분류한 서양보다 3백여 년 앞서 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군선은 판옥선(板屋船)과 거북선[龜船]으로 임진왜란 때 주력선으로 활약했고, 후기의 전선으로 계승, 발전하였다.

(1) 판옥선

1555년(명종 10)에 처음 건조한 군선으로 수군들이 타는 곳을 완전히 판자로 덮어씌워 적의 총탄이나 화살로부터 수군을 보호할 수 있게 설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 수군의 주력선이었으며, 왜선보다 크고 우수하여 여러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2) 거북선

최초의 문헌 기록은 ≪태종실록≫ 태종 13년(1413)조에서 발견되나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최초로 사용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이충무공전서 李忠武公全書≫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3월 27일 여수 앞바다에서 진수하여 5월 29일 사천해전에서 처음 실전에 사용하였다.

이 거북선은 갑판 전체를 거북 등 모양의 철갑으로 덮고 그 위에 추도(錐刀:뾰족한 칼)를 꽂아 적의 접근을 어렵게 하였고, 용두와 귀미 및 선체 좌우에 총혈을 만들어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했으며 특정 부분은 견고하면서도 흘수(吃水), 즉 선체가 물에 잠기는 정도를 얕게 함으로써 당시 해전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는 일본의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와 관계가 순탄해서 군선은 한 번도 해전에 활용된 일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는 기본 정책에 따라 군선은 계속 확보, 유지되었다.

1746년(영조 22)에 편찬된 ≪속대전≫에 의하면 군선의 종류는 전선(戰船) · 귀선(龜船) · 방선(防船) · 병선(兵船) · 사후선(伺候船) 등 13종에 달했으며, 1809년(순조 9)에 편찬된 ≪만기요람 萬機要覽≫에는 별선(別船) · 경보선(警報船) · 군수선(軍需船) 등 8종이 추가되어 모두 21종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전선 · 귀선 · 방선 · 병선 · 사후선 등이 [표 4]와 같이 전체 군선의 83% 이상을 차지하여 조선 후기의 대표적 군선이라고 할 수 있다.

[표 4] 조선 후기의 군선

구 분 전선 귀선 방선 병선 사후선 기타선
속 대 전 117 14 76 161 318 90 776
만기요람 94 30 79 154 292 131 780
자료 : 조선시대 해방사 연구(장학근).

우리 나라 현대 군함의 출발은 1945년 11월 11일(해군 창설일) 해군의 모체가 되는 해방병단이 창설된 때부터이다. 처음 해상 경비업무를 개시할 때는 군함 5척(100톤급 2척, 40톤급 1척, 디젤선 1척, 증기선 1척)과 약간의 상륙 주정으로 진해와 인천근해에서 소규모 해상 경비로 출발하였다.

그 뒤 해군은 장병들이 거군적으로 모금한 성금으로 미국에서 최초로 전투함(PC-701함, 백두산호)을 구입하여 1950년 4월 10일 실전에 배치했으며,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한국 해군이 보유한 군함은 [표 5]와 같다.

[표 5] 6·25 직전의 보유군함 (1950.6.25.)

함종 전투함 소해함 수송함 기 타
척수 PC : 1 JMS : 11 LST : 1 유조정 : 1
AMS : 15 AKL : 1 상륙정 : 1 33척
보조정 : 2

그 뒤 6·25전쟁을 계기로 우리 나라 군함도 군원시대(軍援時代)를 맞이하여 미국에서 대여받은 군함이 주축이 되어 경비함(PF · PCE) · 호위구축함(DE) · 고속수송함(APD) 시대를 거쳐 1963년에는 구축함(DD)시대의 장을 여는 등의 순차를 거치면서 우리 나라 주력 군함이 성장, 발전하였다.

현대 국산 군함의 건조 효시는 우리 해군 기술진에 의해 해군공창에서 ‘충무공정(忠武公艇)‘을 건조한 1946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군함을 우리의 기술과 힘으로 건조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이 낸 방위성금으로 고속정을 건조해서 취역시킨 1972년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우리 해군은 1980년의 한국형 구축함 건조에 이어 1982년에도 한국형 초계전투함을 건조하여 취역시킴으로써 고속정 · 구축함 · 초계전투함 등 모든 군함을 한국 해역의 특성에 알맞게 한국형으로 개발, 건조하여 실전에 배치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 나라 조함기술은 세계 유수의 선진공업국과 대등하게 되었으며, 국내 조선기술 축적에 커다란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형 전투함의 양산체제가 이루어져 우리의 바다를 우리 힘으로 지키는 자주적인 해군력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 군함의 함종별 국산화 단계는 [표 6]과 같다.

[표 6] 함종별 최초 국산화 현황

함종 경비정
(충무공정)
고 속 정 한국형
구축함
초 계
전투함
기 뢰
탐색함
소 형 대 형 중 형
진수일 1946.7.17. 1972.9.6. 1975.4.22. 1977.12.28 1980.4.8. 1982.11.18. 1986.8.30.

(1) 한국형 구축함

우리 해군사상 최초로 건조된 한국형 전투함인 구축함은 우리 해군과 관련 민간 기술자 등 우리 기술진들이 다년간 선진제국의 조함기술을 폭넓게 연구 검토하여 우리 나라 해역 특성에 알맞는 독특한 선형과 독자적인 구상으로 설계, 건조되었다.

이 구축함의 특성은 현대전의 양상에 대처하기 위하여 정밀유도무기와 자동사격통제장치를 갖추어 무장 성능을 향상시키고 최신 기관장비로 고속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공중 · 해상 · 수중을 정밀 탐색하기 위한 최신의 전자장비를 탑재하여 대공 · 대함 · 대잠 등 다중 위협에 동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이 고속 경량화 · 자동화를 완전실현함으로써 소수의 승조원으로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재래식 구축함보다 군수적재능력을 향상시켜 원해작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한국형 구축함의 첫번째 함정은 1980년 4월 8일 울산 현대조선소에서 건조 · 진수(進水)되었으며, 울산함으로 명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해군은 자주적인 해양수호능력과 해상전투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2) 초계전투함

초계전투함은 우리 해군과 부산조선공사 조함기술진들이 독자적인 구상으로 우리 나라 해역의 특성에 알맞는 선형 위주로 설계, 건조된 함정이다.

이 전투함의 특성은 최신 전자장비와 고도의 사격통제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대함 · 대공 · 대잠 등 다중 위협에 동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 전투함은 한국형 구축함의 능력을 일부 축소시켜 소형 경량화함으로써 기존 함정보다 기동성이 뛰어나고 복원력이 월등하다.

초계전투함의 첫번째 함정은 1982년 11월 18일 부산조선공사에서 건조 · 진수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우리 해군의 연근해 해상작전능력이 크게 보강되었다.

(3) 고속정

고속정은 다른 함종보다 빠른 속력과 뛰어난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 건조된 함정이다. 최초의 한국형 고속정은 1972년에 전국의 학생과 교사의 방위성금으로 건조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양산체제를 갖춘 시기는 방위세로 건조하기 시작한 1975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고속정은 특수강과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하여 선체 중량이 가볍고 견고하며 최고의 속력과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최신의 기관과 미사일 등 각종 현대식 장비를 갖추고 있다.

고속정은 크기에 따라 대형 · 중형 · 소형 고속정으로 구분하며, 선제기습공격 · 연안초계 · 대간첩작전 · 해상탐색 및 구조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4) 기뢰탐색함

우리 해군과 부산 강남조선소의 기술진에 의해 건조된 해군사상 최초의 기뢰탐색함은 영국 · 프랑스 ·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개발한 비자성 대형 FRP선체(船體)로, 고성능음탐기 · 무인기뢰처분기 · 수직추진기 등을 장비하여 항만 및 해상접근로에 대한 수중 해저물체의 정밀 탐색 및 식별능력과 기뢰처분능력 및 뛰어난 함 조종 성능을 갖춘 최신예 기뢰탐색함이다.

적의 기뢰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식 복합감응기뢰를 탐색, 식별,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기뢰탐색함의 확보가 요구되어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한 이 기뢰탐색함을 건조함으로써 우리 해군은 대기뢰전 능력을 향상시키고 대형 FRP선 건조능력과 기술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밖에 1993년에는 최신예 상륙함인 ‘고봉함’이 취역하였다. 그리고 잠수함개발에도 노력한 결과 현재까지 ‘장보고함’, ‘이천함’ 등을 비롯한 함정을 보유하게 되어 전력이 증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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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전사』 상(해군본부,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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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군사연구』(최석남, 명양사, 1964)
『순항훈련관계법규해설』(해군본부, 1982)
『한반도 및 주변국 해양력의 역사적 고찰』(해군대학, 1979)
『세계의 현대병기』(박진귀, 한국일보사 출판국, 1984)
「군함의 무해통항권에 관한 연구」(강영훈,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75)
「조선시대해방사연구」(장학근, 단국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6)
『방진회사』(한국방위산업진흥회, 1988)
『효율적인 전력증강사업관리』(김성군, 1990)
『율곡사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국방부, 1994)
『국방정책변천사』(국방군사연구소, 1995)
『바다로 세계로』(해군본부, 1995)
『건군50년사』(국방군사연구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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