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감찰사는 본래 사헌대(司憲臺)·어사대(御史臺)·금오대(金吾臺) 등으로 여러 차례 그 명칭이 바뀌면서, 배속되었던 관직명 또한 자주 바뀌게 되었다.
1275년(충렬왕 1)에 어사대를 다시 감찰사(監察司)로 고치면서 종6품의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감찰사(監察史)로 하였고,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왕이 감찰사(監察司)를 다시 사헌부로 고치면서 감찰사(監察史)를 다시 감찰내사(監察內史)로 하였다.
감찰사(監察史)는 대관(臺官)의 일원으로서 백관(百官)의 규찰(糾察)과 제사(祭祀)·조회(朝會)·전곡(錢穀)의 출납 등을 감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감찰사가 나중에 규정(糾正)으로 바뀌고, 조선시대에도 사헌규정이란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감찰사(監察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