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작에는 크게 왕(王)으로 봉해주는 왕작(王爵)과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5등작이 있었다. 고려의 경우 종친이나 일반 신하에게 실제 봉작해 준 것은 5등작이었다.
다만, 종친의 5등작은 공후백 3단계까지만 수여되었고, 일반 신하는 공후백자남 5단계를 다 수여하였다. 그리고 일반 신하의 5등작은 종친과는 달리 봉지(封地)에 해당하는 군현(郡縣)의 명칭과 개국(開國)이 덧붙여서 호칭되었다.
예를 든다면 ‘○○군개국후(○○郡開國侯)’ ‘○○현개국후(○○縣開國侯)’와 같이 되었다. 이것은 ‘○○군후(○○郡侯)’ ‘○○현후(○○縣侯)’ 혹은 ‘○○후(○○侯)’로도 호칭되었다.
그런데 드물게 그냥 ‘개국후(開國侯)’로도 호칭되었던 것 같다. 실례로는 목종대 한언공(韓彦恭) 한 차례만이 보이고 있는데, 이는 봉지에 해당하는 군현명이 생략되어 호칭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