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서인들의 사주를 받아 기축옥사 때 최영경이 정여립과 연루되어 있다고 무고한 유생.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91년(선조 24)
본관
진주(晉州)
관련 사건
기축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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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서인들의 사주를 받아 기축옥사 때 최영경이 정여립과 연루되어 있다고 무고한 유생.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선조 때의 기축옥사를 날조하도록 무고한 사람이다. 1590년 서인들의 사주를 받고 양천경(梁千頃) 등과 함께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 일당의 자백에서 나왔던 이른바 정여립의 친구라는 길삼봉(吉三峯)이 바로 최영경(崔永慶)이라고 무고하여 옥사하게 하였다.

그 뒤 1591년 양사(兩司)에서 무고인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탄원이 있자, 최영경을 모함한 당시의 언관(言官)이 파면되고, 무고인 양천경 · 양천회(梁千會) · 김극관(金克寬) · 김극인(金克寅) 등과 같이 잡혀 문초당하였다.

그러자 정철(鄭澈)을 따르던 끝에 그와 같은 허위사실을 상소하였음을 자백하여, 양천경 · 양천회 등과 함께 북도로 장형을 받고 유배되어 가다가 장형을 받은 후유증으로 도중에 모두 죽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정여립 연구」(김용덕, 『조선후기사상사연구』 3, 1977)
집필자
김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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