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저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희빈장씨를 옹호하던 남구만을 규탄한 죄로 유배되었다가 벼슬을 단념하였고, 이후 후학 양성에 힘쓰며 「상남상」, 『모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내숙(來叔)
모산재(茅山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51년(효종 2)
사망 연도
1705년(숙종 31)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전라북도 고창군
주요 저서
상남상(上南相)
주요 작품
상남상(上南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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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희빈장씨를 옹호하던 남구만을 규탄한 죄로 유배되었다가 벼슬을 단념하였고, 이후 후학 양성에 힘쓰며 「상남상」, 『모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내숙(來叔), 호는 모산재(茅山齋). 무장(茂長) 출생. 아버지는 함양군수 강필주(姜弼周), 어머니는 황주변씨(黃州邊氏)변태윤(邊泰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4년(숙종 20)에 희빈장씨(禧嬪張氏)를 옹호하던 남구만(南九萬)을 탄핵하다가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당하였고, 이듬 해 다시 남구만 일파의 죄를 규탄하는 소를 올렸다가 진도에 유배되었다. 3년 만에 풀려 나온 뒤 벼슬을 단념하고 향리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오직 학문에 전념하였다. 여러 번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경학과 『심경(心經)』 · 『근사록(近思錄)』에 역점을 두어 연구하였다. 남구만에게 보낸 서찰인 「상남상(上南相)」은 18장에 달하는 장편의 명작이며, 또한 우국충정의 내용이 담긴 많은 시를 남겼다. 저서로는 『모산집(茅山集)』 3권이 있다.

참고문헌

『모산집(茅山集)』
『숙종실록(肅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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