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진(汝鎭). 영선군(永善君) 강지(姜漬)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강응운(姜應運)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朴氏)의 어머니인 고모집에서 성장하였다. 1582년(선조 15)소격서(昭格署)의 참봉으로 입사한 뒤에 차차 관직이 올라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까지 왕을 호종하였으며, 1593년에 공조좌랑으로 승진하였다가 고창현감이 되었다. 1604년에는 괴산군수가 되었으며, 지방관으로 재직중 흉년이 들어 기근과 질병에 시달리는 수천 명의 백성을 구휼하여 명성이 높았다.
아버지의 노환을 이유로 귀향하려 하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선치(善治)를 아쉬워하였다.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병간호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친척과 주위 사람들에게는 인덕과 온정으로 대하였다.
평생동안 선악을 구별하여 행동을 조심하였고, 성품이 돈후하고 사람들에게는 항상 인정을 베풀었다. 뒤에 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