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신천(信川). 호는 화곡(化谷). 증조부는 우정승을 지낸 강숙재(康淑才), 할아버지는 상호군을 지낸 증상산부원군(贈象山府院君)강서(康庶), 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곡산군(谷山君)강윤성(康允成)이다.
처음 원나라에 들어가서 숭문감소감(崇文監少監)이 되고, 이름을 빠이앤티무르(伯顔帖木兒)라 칭했다. 1354년(공민왕 3) 본국에 돌아와 강중상(姜仲祥)과 함께 지밀직사사를 거쳐, 찬성사가 되었다.
1374년 오랑캐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한 김의(金義)가 명나라 사신 채빈(蔡斌) 등을 살해하고 북원(北元)의 장수 나하추(納哈出)에게 달아났는데, 이때 김의를 원나라에 보냈다는 혐의로 유배되었다.
누이동생은 신덕왕후(神德王后)로 이성계(李成桂)의 비이다. 양가의 통혼은 전형적인 부원관력(附元官歷)을 배경으로 한 결합으로 원나라의 몰락기인 공민왕 때에 고려조정에 진출하여 현달한 가문이다.
이성계의 정변과 집정과정에서 유력한 협력세력으로 작용하였다. 조선개국 이후 재령백(載寧伯)의 작호를 받았으며, 제1차 왕자의 난에 일족이 참화를 당하였다.